[데스크칼럼] '오너 부재'면 M&A는 실패하게 돼 있다?

  • 등록 2015-02-25 오전 10:39:32

    수정 2015-02-25 오전 10:39:32

[이데일리 이성재 생활산업부장]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CJ그룹은 싱가포르 물류기업 APL로지스틱스의 인수가 무산되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영공백으로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을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해외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오너 부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다음달 대법원 상고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닌가. CJ그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번 APL로지스틱스 인수 무산을 ‘이 회장 구하기’로 바꿔 재포장했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이 회장이 경영에만 복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궁극적인 인수 실패에 대한 원인 분석은 미뤄둔 채 말이다.

이 회장은 2013년 7월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탈루하고 국내외 법인자산을 횡령한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1심은 이 회장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4년에 벌금 260억원을 선고했지만 2심은 국내 법인자금 603억원 횡령 등을 무죄로 판단, 징역 3년에 벌금 252억원을 선고했다. 법정 구속된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면서 올 3월까지 구속집행이 정지된 상태다. 그런데 진위와는 상관없이 이번 CJ그룹의 포장 덕에 이 회장은 이대로 병원치료를 받다가 풀려나려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됐다.

그렇다면 과연 오너 부재를 겪는 기업들은 CJ그룹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인가. 다른 예로 SK그룹은 어떤가. 자금 횡령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30일로 만 2년을 채웠다. 징역 3년 6월을 언도받은 최재원 부회장도 23개월째 복역 중이다. CJ그룹의 주장대로라면 SK그룹의 경영실적은 최악이어야 한다.

하지만 최 회장이 2012년 인수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17조 1260억원, 영업이익 5조 1090억원을 달성, 전년 대비 각각 21%, 51% 증가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2013년에 이은 기록 경신이다.

물론 SK하이닉스의 이러한 성공은 최 회장의 전폭적인 투자지원을 밑거름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단순 대비가 무리일 수는 있다. 최종 의사를 결정하는 오너가 없는 탓에 성장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오너 부재’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미 다 나와 있는 시나리오에도 대비하지 못하고 실패 원인을 ‘현실’ 탓으로 돌리는 CJ그룹 경영진에겐 과연 책임이 없는 걸까.

M&A에서 기업의 적정가치를 결정하고 미래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궁극적인 역할은 최고경영자(CEO)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이조차 오너의 몫이라고 떠넘긴 CJ그룹 경영진의 실책은 과연 누가 책임질 일인가. 이 또한 오너의 부재 탓인가.

만약 이 회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APL로지스틱스를 인수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진 않았을 것이다. APL로지스틱스는 일본 킨테츠월드익스프레스(KWE)에게 최종적으로 넘겨졌다. 제시한 금액은 1조 3500억원. 이는 연매출 2조 7000억원의 KWE가 드러낸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수를 위해 본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과열될 인수전을 미리 판단, 전략적으로 접근해 따낸 결과물인 것이다.

결국 CJ그룹이 실패한 건 오너 부재가 아니라 전략 부재일 수 있다는 말이다. 정작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세밀히 분석하지 않고 오너 부재란 허울 좋은 명목을 서둘러 내세운 건 CJ그룹의 더 큰 실책이다. 오히려 책임 있는 경영자의 자세를 취하는 게 부재 중인 오너를 위한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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