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피용익기자]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이 부시 집권 2기의 새로운 국무장관으로 내정됐다.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에게 국무장관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상태며 이르면 16일 오전(현지시간) 라이스의 국무장관 지명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아빠, 제가 안에 못 들어가고 밖에서 백악관을 구경해야 하는 건 피부색 때문이에요. 두고 보세요, 저는 반드시 저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부모와 함께 백악관을 구경하던 10살짜리 소녀의 당돌한 발언은 25년 후 현실이 됐다. 1990년 조지 H 부시 당시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당당히 입성한 것. 소설과도 같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콘돌리자 라이스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여성 안보 보좌관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지난 2002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라이스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여성"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라이스는 1954년 인종차별이 극심하기로 유명했던 남부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났다. 교사였던 어머니와 장로교 성직자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3살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을 정도로 피아노를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피아니스트가 되고싶던 라이스는 흑인 최초로 버밍햄 음악학교에 입학했지만 자신이 흑인이라는 점에 한계를 느끼고 꿈을 바꾸게 된다.
어느날 국제정치학 강의를 듣던중 `소련학`의 대가가 되기로 결심한 라이스는 덴버 대학과 노트르담 대학에서 정치학과 국제학을 전공했으며, 노트르담 대학에서 석사, 덴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불과 26살이란 나이에 명문 스탠포드 대학교의 정치학 부교수가 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학계에서 그녀는 러시아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라이스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무기 통제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라이스를 처음 만난 스코우크로프트는 이렇게 회고한다. "라이스는 수줍어하지 않았다. 그렇다교 교만하거나 직관적이지도 않았다. 참으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녀를 더 알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도 그녀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4세에 조지 H 부시 행정부 당시 소련 자문역을 맡아 정계에 입문한 라이스는 탄탄한 지식과 반대파를 끌어들이는 설득력으로 큰 일을 처리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1989년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서 라이스를 만난 미하엘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은 훗날 "그녀는 내가 아는 소련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며 라이스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라이스는 부시 대통령 부자(父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아버지 부시 밑에서는 외교정책 보좌관으로서 소련 해체와 베를린장벽 붕괴의 역사적 사건을 지켜봤으며, 아들 부시 현 대통령 밑에서는 안보 보좌관으로서 9·11사태 수습과 이라크전쟁의 승리를 일궈냈다. 부시 대통령은 그녀에게 `콘디(Condi)`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19세 덴버대 우등 졸업, 26세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스탠퍼드대 부교수 임용, 34세 조지 H 부시 전 행정부 국가안보위 소련 자문역, 38세 스탠퍼드대 최연소 부총장, 46세 첫 여성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50세 국무장관…. 독신여성 콘돌리자 라이스의 질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콘돌리자 라이스 이야기(The Condoleezza Rice Story)`의 저자 안토니아 펠릭스는 "그녀는 최고를 지향했고, 또 그 정상에 올라섰다"며 "라이스는 현재 워싱턴 정가에서 차기 부통령, 더 나아가 미래의 대통령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