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선박사고 인지해도 출동 못하는 해경

해양오염방제 분야 분법 위해 연구용역 착수
소관 법률 없어 신속 대응 및 예방 어려워
해수부에 사고 접수돼야 해경 현장 대처 가능
전문가들 "해수부 현장 이관하고 정책 집중해야"
  • 등록 2021-11-23 오전 11:09:16

    수정 2021-11-23 오전 11:26:19

[이데일리 임애신 기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선박에 기름이 새고 있다. 이상징후를 포착한 해양경찰이 이 배를 따라간다. 아니나 다를까 시커먼 기름이 푸른 바다에 급격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해경이 현장에서 사고를 예측하고 따라붙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양수산부로 사고 신고가 접수된 후 해수부가 해경에 구조 명령을 내려야만 구조할 수 있어서다.

해경, 선박사고 인지해도 출동 못하는 속내는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23일 해수부와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해경은 지난 6월 해양환경관리법에서 해양오염방제 분야를 분법하기 위해 ‘해양오염방제에 관한 법체계 개선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연구 결과는 다음 달 나올 예정이다.

해경이 용역을 발주한 것은 바다에서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해경이 투입될 수 있는 지금의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해양오염방제에 관한 해경 소관 법령을 제정해 해양사고로 인한 오염 상황에 예방부터 방제까지 ‘원스톱’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장고도 인근 해상에서 좌초된 예인선 주변에 오일펜스가 설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경, 사고 예방 가능토록 소관법령 필요”

육지에서는 사고가 나면 소방관이나 경찰이 현장 발견 즉시 수습한다. 해경도 똑같은 경찰인데 그럴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정부조직법 제43조에 해양오염방제는 해경의 사무로 돼 있지만, 방제 업무가 해수부 소관 법령인 ‘해양환경관리법’에 명시돼 있는 탓이다. 실제 바다에서 방제 대응을 하는 것은 해경이지만, 해양에서의 사고와 선박사고 등 재난관리는 해수부가 주관한다.

해경은 1978년부터 해양오염방제의 실질적인 업무를 총괄해왔다. 1995년 7월 여수 씨프린스호 오염사고와 2007년 태안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등 재난 수준의 해양 오염 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했다. 방제와 관련한 해경의 역할과 책임이 커졌지만 43년 동안 소관법령은 없는 상태다.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집행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를 위해서는 해양오염방제를 해수부 소관 법령인 해양환경관리법에서 분법해 해경 소관의 법령으로 제정해야 한다.

지금은 해경이 해수부 지시를 받아 사고를 수습하는 데 그치지만, 해양오염방제가 해경 소관의 법령으로 제정되면 사고 예방이 가능해지고, 국제 환경 규제 대응도 유동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해상에서의 사고는 선제적 예방이 중요하다. 해상사고는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화재와 폭발 등을 동반한 복합적인 사고로 양상이 다변화하는 특징이 있어서다. 해양 사고가 대규모 재난 사고로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육지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소방관 등 출동할 수 있는 인력이 지역마다 배치돼 있어 대규모 피해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반면 바다는 육지보다 면적이 4.5배나 넓은 데다 해경이 모든 사고를 담당한다. 사고 신고를 해경에서 바로 받으면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 산업이 발전하고 새로운 오염원이 등장하는 등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적시에 대응하고 달라진 현장 상황을 입법 활동을 통해 반영하는 것은 필수다. 지금은 법을 개정하거나 입법을 추진할 때 반드시 해수부를 통해야 해 현장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진=해수부)
해양오염방제 분법 지지부진…“현장 해경에 맡겨야”

해양오염방제 분법이 이뤄지면 해경이 실무상의 문제를 즉각 반영해 효율적으로 업무를 집행할 수 있게 된다. 해상에서의 신속한 대응은 국민 생명과 환경자산을 지키는 중요한 열쇠다.

그런데도 해양오염방제 분법은 난항을 겪고 있다. 해양환경관리법 분법을 해 온 해수부가 해양오염방제 분법에는 유독 유보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해양환경관리법의 법 조항이 133개로 방대하고 법률 내 관련 기관이 많아 업무 혼선이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야별로 분법을 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해수부는 해양환경관리법에서 2017년 ‘해양환경보전 및 활용에 관한 법률’과 2019년 ‘해양폐기물관리법’ 등을 분법했다.

하지만 방제 분야의 분법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양 오염의 범위와 방제업무 간의 관계 등에 이견 때문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양오염사고가 해양환경보전과 분리하기 어렵다”며 “예기치 못한 오염 사고가 발생하면 보전 활동 자체가 어렵게 돼서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분법을 검토했다가 분리하지 않고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해수부 지방해수청에 해양환경과가 있고, 산하기관인 해양환경공단의 태생이 방제조합이다 보니 해양방제업무에 대한 소관 법률을 해경에서 가지면 업무 중첩 또는 축소가 발생할 것”이라며 “해수부는 정책과 현장을 한 번에 관리해야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해수부가 현장 기능은 해경에 이관하고, 정책 기능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한다.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양오염 방제행정은 긴급성이 핵심 사항이기 때문에 현장 중심의 기능적 행정 체계가 완비돼야 한다”며 “이런 면에서 해경이 주도적으로 방제 행정을 담당하고 지방자치단체는 해경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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