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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검찰이 ‘한보 사태’의 장본인 정태수(96) 전 한보그룹 회장의 사망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 작업에 나섰다. 정 전 회장의 사망이 확인되면 12년 간의 해외 도피 행각과 당국의 추적도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예세민)는 전날 외교부 외교 행랑편을 통해 정 전 회장의 4남 한근(54)씨의 여행가방 등 압수된 개인 소지품을 인계 받았다. 이 가방에는 에콰도르 당국이 발급한 정 전 회장의 사망 증명서와 함께 화장한 유골함, 정 전 회장의 키르기스스탄 국적 위조 여건 등이 있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정씨는 에콰도르를 떠나 파나마에서 붙잡혔을 때 여행가방 등을 압수당했다.
사망 증명서에는 에콰도르 당국 발급으로 기재돼 있다. 정 전 회장의 위조 여권상 이름과 함께 2018년 12월 1일 사망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지난 22일 국내로 압송된 정씨는 검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지난해 12월 에콰도르에서 사망했고 자신이 임종을 지켜봤다’는 취지의 내용을 진술했다. 정씨는 이와 관련해 사망 증명서 등을 정 전 회장의 장례 관련 자료라고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4남이 구체적 자료까지 내놓자 정 전 회장의 실제 사망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고, 우선 에콰도르 당국을 통해 자료의 진위 여부 등을 확인하기로 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에콰도르 현지 조사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으로 간 그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갔다. 지난 2009년 정 전 회장의 소재를 포착한 법무부가 카자흐스탄 당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자 이후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국은 키르기스스탄과는 지난해 11월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했는데, 이에 정 전 회장이 다시 에콰도르로 도피한 게 아니냐는 추정이 제기된 상태다.
검찰은 다만 정씨의 진술과 자료가 허위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조만간 생사 여부 등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의 사망이 확정되면 관련 수사와 재판이 종결된다. 법원은 정 전 회장의 교비 횡령 사건에 대해 2009년 5월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징역 3년 6월을 확정했다. 이 밖에 다른 혐의로 기소중지된 사건들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2225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체납 세금은 받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에선 오랜 해외도피 생활을 한 정 전 회장의 일가가 상속받았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대신 정 전 회장의 해외 은닉재산 등을 찾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4남 정씨가 해외로 빼돌린 돈을 추적할 방침이다.
정씨는 IMF 사태 당시 한보 자회사 자금 322억원을 스위스 비밀계좌 등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지난 1998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도주했다가 21년 만에 파나마에서 붙잡혀 국내로 압송됐다. 검찰은 구금 중인 정씨를 상대로 본인 및 아버지의 은닉재산 존재 여부 등을 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1998년 정씨를 기소한 뒤 그가 해외에 머무는 동안 1년 단위로 피고인 구금용 구속영장을 발부해왔다. 정씨가 송환됨에 따라 이 사건 재판도 조만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