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FX칼럼)가랑비에 옷 젖듯이

  • 등록 2002-10-08 오후 3:16:03

    수정 2002-10-08 오후 3:16:03

[이진우 칼럼니스트] 지난 7월22일 1164원의 바닥을 확인한 이후 한동안 급등락을 거듭하던 환율이 어느새 1240원대까지 올라섰습니다. 그 무렵 730을 오르내리던 종합주가지수는 100포인트나 떨어졌군요.

시장은 참 얄밉게 구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 바닥에 발을 디딘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포기하거나 미련을 떨치지 못하게 하면서 조금씩 벌다가 크게 잃는 장세를 항상 만들어 가니까요. 최근 주식과 환율 거래에서 번 사람보다는 잃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은 여느 때와 다름없습니다. 어영부영 환율이 많이 올라왔는데, 지금쯤 시장참여자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봅니다.


◆ 미스터 엔(Mr. Yen)의 화려한 말바꾸기
“일본 위기상황이 엔화약세를 이끌 것이기에 달러/엔 환율이 연말 160~170엔으로 급등할 수 있을 것.”…(2002년 2월21일)

연초 두 세 차례에 걸친 135엔 상향돌파가 무산되고 133엔대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며 마지막 135엔 공략시도가 펼쳐지던 무렵이다. 2월28일 134.98을 일중고점으로 찍은 이후 3월들어 급락세로 돌변한 달러/엔은 126엔 중반까지 급하게 밀리다 4월초 133엔까지 반등시도가 있은 뒤 이후 7월 115엔 중반까지의 날개 없는 추락이 이뤄졌다. 135엔의 돌파가 140엔을 넘어 150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공갈협박(?)이 난무하며 달러/원 환율도 1,330원대의 고공비행을 힘겹게 유지하던 시절이라 사카키바라(전 일본 재무성 차관, 현재 게이오大 교수로 재직)의 발언은 가슴 약한 사람들의 용감한 고점매수(Buy on Rally)를 유발할 만 했다.

“일본 정부가 달러/엔 120엔을 유지하고 싶어하며 엔 강세는 일본경제에 위협적인 요소. 일본은 120엔선 방어를 위해 개입을 지속할 것.”…(2002년 6월24일)

6월21일 124엔대에서 120엔대로 하루만에 내려선 달러/엔 환율로 달러/원 환율 또한 재차 1220원의 하향돌파가 이뤄지며 1100원대 환율을 향한 마지막 하락 5파에 시동이 걸리던 무렵이다. 122엔대에서부터 BOJ(일본은행)의 단독개입이 시장에서 이루어지던 때라 그의 발언은 120엔대 지지를 위한 일본 정부의 의지가 상당히 결연함을 시장에 알리는 역할을 감당했으나 우리가 확인했듯이 달러/엔은 이후 115엔대까지 추가급락이 이뤄졌다.

120엔대에서 사카키바라의 발언에 고무되어 달러/엔 롱포지션을 취하여 지금까지 그 포지션을 들고있는 세력들이 있다면 사카키바라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것인지는 짐작이 잘 안 간다.

“투자가들이 달러 롱포지션을 처분하기 시작하면서 달러/엔 환율이 2주일내로 120엔 밑으로 떨어질 것 같으며 당분간 115 ~ 125엔의 범위가 유지될 것.”…(2002년 9월 27일)

9월 24일 124.20엔의 일중 고점을 찍고 단기급등에 이은 하락조정 국면이 진행 중일 무렵이다. 120엔이 강하게 지지되고 이틀 후부터 다시 오름세를 보인 달러/엔 환율이 최근 서울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던 1,228원대의 상향돌파를 이루어내는 모멘텀으로 작용했으니 이번에도 사카키바라의 발언에 기대어 1230원에서 달러매도에 나섰던 세력들은 낭패를 본 셈이다. 그가 말한 2주일 내라면 이번 주말까지가 되니 124엔대의 달러/엔이 과연 3일 안에 120엔 밑으로 떨어질 것인지도 한 번 지켜볼 일이다.

“일본의 기초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달러화가 130 ~ 135엔까지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달러화가 130엔까지 상승하면 미국으로부터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할 것.”…(2002년 10월 8일)

엔화가치가 얼마나 하락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카키바라가 대답한 내용을 다우존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120엔 밑으로 잠시 빠졌다가 130엔으로 간다는 얘기인지 그냥 124엔대에서 130엔을 향해 돌진할 것이라는 얘기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도 사람일텐데 조금은 귀가 가려웠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시장에서 믿을 얘기는 없다
상당히 오랜 기간 공방전을 펼쳤던 1228원대 공방은 롱플레이어들의 승리로 판정났다. 국내외 증시의 바닥을 알 수 없는 폭락세, 미국 서부지역의 항만폐쇄로 인한 단기적인 수출 적체현상 가능성, 다케나카 헤이조 신임 금융상의 부실채권 해결의지에 대한 시장의 조변석개(朝變夕改) 하는 듯한 해석과 반응에 따른 엔화의 급작스런 약세(달러화의 강세가 아니라 엔화의 약세이다) 등등 모든 재료들이 환율의 추가상승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수급상으로도 수출업체들의 네고물량이 결제수요나 역외 매수세, 그리고 은행권의 투기적 매수세를 누르지 못함에 따른 결과이다.

1230원 돌파이후 1240원대 안착에는 하루밖에 안 걸렸다. 1230원에서 숏으로 승부을 걸었던 세력들이나 그 아래 레벨에서 구축된 이미 오래 묵은 OTM(Out of The Money) 포지션의 손절매수가 많이 나온 것으로 짐작되는데, 지금 장세는 투기 세력들의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단가 좋은 롱포지션을 보유하고 있는 곳들로서는 아주 거래하기 편한 장이다. 시장이 엷다 싶을때 조금만 뜯어 올리면 추가적인 매수세를 유발하기에 안성맞춤인 레벨이자 주변 여건이라 숏플레이어들이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업체들인데, 지금의 환율상승세가 지난 4월 이후의 하락추세를 마무리하고 달러강세로 추세가 완전히 전환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기에 고민이 크다. 지금 그러한 추세전환에 이미 진입했고 사카키바라가 말하는대로 130엔까지 다시 달러/엔 환율이 오를 것이 확실하다면 뒤도 돌아볼 것 없이 매수헤지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이런저런 보고서나 시황을 읽어보면 아직 달러강세로의 추세전환을 확신하기 보다는 달러급락 이후의 반등 국면이 언제 어느 레벨까지 이어질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지는 듯하여 혹시라도 “내가 사고 나면 바로 빠지는 장”이 될까 하는 점이 두려운 것이다.

기술적으로 시장에 접근하는 자들은 1228원이라는 38.2%의 되돌림 수준이 상향돌파 된 만큼 향후 50%(1248원), 61.8%(1268원) 정도의 반등가능 레벨까지 이미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증시의 부진과 달러/엔 환율의 125엔 과 127엔을 향한 상승세가 이어지면 가능한 얘기다. 그리고 지금은 환율이 하락반전 할 모멘텀(외국인 순매수가 수반된 증시의 회복세, 달러/엔 환율의 급락세, 은행권 DR(해외주식예탁증서) 매각대금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의 직접투자자금의 유입 등)이 부재하고 아시아권 통화들의 달러대비 약세추세가 강하게 진행중인 만큼 “고점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달러매도는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환율급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달러매수 헤지에 나서고자 하는 세력들이나 이 정도면 충분히 높다는 판단 하에 달러매도 헤지에 나서려는 세력들까지 유의해야 할 부분은 아직 “몰빵”으로 승부를 걸 때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향후 며칠 혹은 몇 주간의 장세를 지켜보며 분할매수나 분할매도로 탄력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수 7500이 이미 붕괴된 다우존스 지수, 지수 1100의 붕괴를 눈 앞에 둔 나스닥, 그리고 종합주가지수 630에서 공방을 펼치는 한국의 종합주가지수에 이르기까지 추가급락과 반등의 가능성은 거의 50 : 50에 달한다. 환율이 오를 수 밖에 없는 경우의 수인 국내외 증시 폭락과 달러/엔 상승이라는 조합에 변화가 생길 여지가 있으며, 이 시점에서의 뉴욕증시 회복이나 급락이 달러/엔 환율에 앞으로 미칠 영향력 또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둘째, 이미 시장에 노출된 재료이기는 하나 금주 말쯤에 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알려진 담배인삼공사의 DR 매각대금의 영향력을 살필 필요가 있다. 막상 그러한 달러공급요인이 시장에 가세해도 환율이 밀리지 않고 매수세가 물러서지 않는다면 그 만큼 시장에서는 달러가 부족한 상황이 될 것이고, 3억불 남짓으로 추정되는 물량에 환율이 제법 큰 폭의 하락조정 국면을 연출한다면 그 동안의 환율상승세에는 투기적인 달러 매수세가 큰 역할을 감당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은행권들의 소소한 금액에서부터 큰 금액에 이르기까지 달러 차입이 10월 들어 성사되기 시작한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확인할 길이 없는 내용이라 함부로 언급하기 껄끄럽지만 지난 봄과 여름의 환율 급락을 경험한 아시아권 중앙은행들의 하반기 외환정책의 초점은 환율안정으로 모아지는 듯 하다. 특히 우리나라 중앙은행으로서는 든든한 외환보유고를 위시해서 마음만 먹으면 외환시장이 필요이상으로 보이는 오버액션을 진정시킬 정책적 수단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셋째, 지금은 경제학 이론이나 상식에 따른 환율 움직임이 보장되지 않는 시장인 만큼(주가가 연일 5~6 년만의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고 대일본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의 통화가 일본의 엔화에 대해 강세를 지속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일본이 정말 의지를 갖고 은행권의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면 엔화 강세요인인가, 약세요인인가) 어느 정도 투기 세력들이 강하게 달려든 장세라는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엔화의 경우 언제라도 120엔에서 125엔 사이를 오르내리더라도 거기에 적당한 구실을 갖다 붙일 수 있고 원화만 하더라도 1200원에서 1250원 사이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환율의 움직임을 설명하려 들자면 설명할 수가 있다. 그 동안 장세를 주도해 온 세력들이(서울 외환시장 같으면 역외세력들이나 평소 달러 롱을 선호하는 메이저 은행들) 달러매수로 적당히 벌 만큼 번 다음에 롱포지션 청산 후 숏으로 돌 가능성도 이제는 염두에 둬야 할 레벨이기도 하다.

뉴욕에서의 증시관련 보도나 국내 경제지의 증시 해설면을 보면 막연히 바닥에 가까워졌다거나 주가의 반등에 대비할 시점이라는 내용을 접할 수 있어 아직도 “추운 시절”이 더 이어져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든 것도 사실이나 지금은 섣부른 판단에 앞서 장세를 좀 더 지켜볼 시점이라 생각된다. 물론 1228원대 공방이 치열하게 이루어질 때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이냐”며 달러매수에 나선 세력들로서는 “늘 지켜만 보고 있어라. 돈은 언제 벌거냐?”고 조롱할 만 하지만, 3~4원의 변동에 손절매를 단행하고 포지션을 꺾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길게 시장을 봐야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면 조금만 더 고민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의 사카키바라 선수는 오늘만 하더라도 콜럼비아 대학에서의 한 연설을 통해 “4230억 달러에 달하는 은행권 부실채권을 해소하기 위해 고이즈미 내각이 각종 조치를 서두르고 있으나 이러한 조치들로 인해 기업파산은 가속화 될 것이며 실업도 증가해 경제회복이 둔화되어 실제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견해를 피력하였음이 보도되고 있다. 왕년의 미스터 엔의 말을 이번에도 믿어야 할지 속아줘야 할지 판단이 잘 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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