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2009년부터 반입을 시작하는 경주 방폐장에는 300년이 지나면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중․저준위 폐기물만 처분할 수 있다. 반면에 고리, 영광, 울진, 월성 등 4개 발전소에서 임시로 저장하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는 방사능이 30만년 이상 지속되는 고독성 폐기물이다.
원자로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다시 연료로 재활용하는 프랑스, 일본 등은 이것을 사횽후 핵연료라고 부르지만, 재처리하지 않고 영구 처분하는 캐나다, 스웨덴, 핀란드는 고준위폐기물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아직 재처리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후 핵연료도 아니고 고준위 폐기물도 아니지만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로 부르고 있다.
중․저준위 폐기물보다 방사능이 1000배나 높은 이 사용후 핵연료가 우리나라는 작년 말까지 8670톤이 발생했고 2020년에는 3만6000톤, 2100년이면 8만~9만톤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재처리, 재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영구 처분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그러나 원자력연구원 등은 이미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뽑아내지 않는 재처리 기술과 이것을 다시 연료로 사용하는 재활용 기술개발에 착수하여 2040년 상업용 발전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핵무기를 제조할 수 없도록 이물질이 섞인 플루토늄(TRU, 초우라늄)을 분리해서 재활용하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사용후 핵연료의 부피는 1/20, 처분장 면적은 1/100, 방사능은 1/1,000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원자력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제4세대 기술이라고 부르는 이 방식이 전문가들의 희망대로 안전성과 경제성을 모두 충족하는 상업화가 가능한가 여부다.
따라서 지금처럼 발전소 별로 저장시설을 증설할 것인지 아니면 제3의 장소를 정하여 한 곳에 집중 저장할 것인지에 관한 공론화를 2008년까지 마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그러나 앞으로 18개월 안에 중간저장 방식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중간저장 방식이 결정된 후의 부지선정 절차가 정부 희망대로 2년 안에 끝날지도 의문이다. 미국, 핀란드, 프랑스는 처분장 터 선정에 20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2년으로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
경주 방폐장은 해수면 아래 80~130 미터 지하 동굴에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분하도록 설계돼 있다. 총 80만 드럼 중 1차로 10만 드럼을 처분하는 데만 1조500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원자력 발전사업자가 사후처리충당금으로 부담하는 비용은 1드럼 당 400만 원 정도인데 실제 처분비용은 1500만원으로 방폐장 터 매입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예산보다 3배 이상을 지출하는 셈이다.
산업자원부는 이런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논의 주제 등에서 일정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의 제정과 같이 중요한 문제를 이 위원회에서 공론화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과학기술부장관과 산업자원부장관으로 이원화돼 있는 사용후 핵연료 관리의 권한과 책임을 산업자원부장관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법안의 주요내용인데 부처협의 과정에서 과학기술부의 반대로 보류됐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 처리, 처분의 권한과 책임을 지금처럼 두 부처가 공동으로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 중요한 정책결정이 주도권 다툼으로 지연될 우려가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 책임을 회피할 구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가 주관하는 공론화위원회에 과학기술부가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현실이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중․저준위 방폐장 터 선정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모처럼 시도하는 원자력정책의 공론화 절차가 정부 내부의 갈등 때문에 반쪽짜리 공론화가 되도록 국민들은 보고만 있을 것인가. 공론화 절차의 운영을 정부에만 맡겨두지 말고 시민사회 중심의 공론화 절차를 설계하여 투명성과 다양성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다.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장
-前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
-前 대통령비서실 환경비서관
-前 경기도 의왕시장
-卒 고려대 행정학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