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브랜드 관리` 샛길은 없다

  • 등록 2006-12-18 오후 6:09:18

    수정 2006-12-18 오후 6:09:18

[이데일리 김유정기자] 내년이면 세계 자동차 업계의 선두가 바뀔 듯합니다. 위기의 GM이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 타이틀을 결국 일본 도요타에게 내주게 된다는 것이죠. 도요타는 시가총액에 이어 생산량 기준으로도 명실공히 `넘버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됩니다. 도요타의 승리는 특히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고, 브랜드 관리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국내 자동차 메이커에게 시사점을 남기고 있습니다. 국제부 김유정 기자의 얘깁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5년전 오늘, 1991년 12월18일.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제네럴모터스(GM)는 향후 4년내에 북미 지역 공장 21개를 폐쇄하고, 수 만명의 직원을 감원하겠다는 우울한 발표를 했습니다.
 
지난 1980년대 후반까지 활발하게 진행하던 사업 다각화 노선에서 이탈, 설비가 노후된 공장을 폐쇄하고 감원하는 등 `합리화 계획`으로 돌아선 역사적인 날입니다.

 
80년대말 미국 국내시장의 침체와 90년대초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공세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량과 경영진 교체 등 대수술에 들어간 것이죠. GM의 계획은 주요 경제적 사건을 날짜별로 기록해 놓은 책(This Day in Business History)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후 GM은 비자동차 부문과 부품사업 부문인 델파이 등을 매각하고, 자동차 부문에 역량을 집중했지만 시장의 신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과도한 복지혜택에 따른 비용부담은 컸고, 구조조정도 회사의 의도대로 수월하게 이뤄지지는 못했습니다.
 
새로운 제품들을 내놨지만 고유가 등 변화하는 시대흐름을 선도하지는 못했습니다. GM은 신용도가 투기등급으로 추락하면서 파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기업사냥꾼의 공격으로 경영권이 위협받는 등 최악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91년 이후 15년만에 다시 감원과 폐쇄, 매각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기댄 것도 상황이 그만큼 다급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도요타는 올해 하이브리드카의 판매 호조 등으로 최고의 나날을 구가해 왔습니다. 그동안 도요타가 보여준 성장세를 감안할 때 GM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고, 예상은 결국 내년에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도요타라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도요타는 최근 차량결함 은폐와 리콜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품질` 신화에 큰 흠집을 남겼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GM을 따라잡기 위해 가속 페달을 밟아대다가 정작 품질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요타는 문제를 숨기거나 해결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드러내놓고 해법을 찾았습니다. 도요타는 지난 2개월간 제품개발 과정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일부 라인에서 보다 빨리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품질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도요타는 결국 `성장을 양보하더라도 품질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품질관리를 위해 성장계획에 자체적으로 제동을 걸었습니다. GM이 품질과 브랜드 문제를 외면하고, 비용부담 해소를 위해 대증적 요법을 반복한 반면 도요타는 품질과 브랜드라는 핵심사안을 바로 짚고 들어갔습니다. 품질과 브랜드에 문제가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을 산다면 어떤 제품과 기술로도 1등 자리를 꿰찰 수 없다고 본 것이죠.

우리 자동차 업계는 어떨까요. 최근 외신에는 GM이나 도요타 못잖게 현대자동차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경제전문지 포천을 시작으로, 월스트리스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비즈니스위크에 이르기까지 번갈아가며 현대차 문제를 꼬집습니다.
 
환율요인, 이른바 원화강세 때문에 경쟁업체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게 문제제기의 1차적 배경입니다. 여기에 현대차의 `평범치 않은` 노사관계, 정몽구 회장에 대한 재판과 그로 인한 경영공백 우려 등이 더해집니다.

외신 보도의 상당부분은 국내에서 익히 알려져 있는 내용이지만 그들이 전세계 금융시장과 관련업계에 두루 배포돼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상황이 좋지않다 보니 외신뿐 아니라 평소 현대차에 우호적 입장을 보였던 미국의 자동차품질조사기관도 `삼성은 전세계 브랜드지만 현대차는 아니다`는 쓴소리를 내놓습니다.
 
올해초 현대차가 기아차의 미국 진출을 확정하면서 글로벌 브랜드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것에 비하면 상전이 벽해로 변한 느낌입니다. 외신의 관심과 시장 파급력이 큰 만큼 현대차의 대응도 민감합니다. 외신에 부정적 기사가 실리면 이 내용이 국내 언론에 확대 재생산되지 않도록 분주한 모습입니다.

현대차는 갑자기 늘어난 비판에 전전긍긍하면서 비판적 기사를 막는데 급급하고 있지만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봐야 합니다. 외신에 공격의 빌미를 주고 있는 환율문제는 원고(高)를 이겨내기 위한 전략과 전술로 해법을 찾아야 할 사안입니다. 과거 엔고로 유사한 고통을 겪은 일본 도요타가 렉서스라는 고급 브랜드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도요타는 엔고를 극복하기 위해 원가절감과 고급화 전략을 통해 환율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메울 수 있었습니다.

일본 메이커들은 엔고 극복을 위해 전사적 품질관리와 재고 최소화 등 경영합리화를 추진했고, 글로벌 재배치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현대차가 위기를 방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환율 파고를 이겨내기 위해 동남아시아와 남미 지역에도 해외 생산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정몽구 회장은 브랜드 경영을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이같은 노력을 몰라주는 외신이 불만스러울 수도 있지만 문제를 덮어두는데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해법을 찾고 있다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노조 문제와 경영공백 우려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반복되는 파업과 구속수감되는 총수의 사진들을 신문에서 막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죠.

최근 기획취재차 기자가 방문했던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 기업들을 이끌고 있는 인베스터(Investor AB)의 브랜드 관리 키워드는 `존경`이었습니다. 사브, 에릭슨 등을 소유하고 있는 스웨덴 최고 재벌가문인 발렌베리는 국민들에게 그 이름만으로도 넘치는 존경을 받습니다. 소유 기업들의 이미지도 좋을 수 밖에 없겠지요.
 
발렌베리 기업들이 사회환원을 많이 하고, 스웨덴 국가 경제 전체를 이끄는 `국민 기업`이기는 하지만 해답은 여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자회사 경영에 대한 철저한 독립성과 투명한 경영 등 기업경영 그 자체에서 `존경`을 이끌어내는데 그 비결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존경`이 브랜드 관리의 중심에 있습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의 브랜드를 `존경받는` 것을 통해 관리하겠다는 자존심. 국가 경제를 이끄는 기업의 브랜드 관리가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요.
 
도요타의 사례에서 보듯 위기일수록 기회는 가까이 있습니다. 환율과 노조문제, 총수 재판 등으로 악재가 중첩한 이 때, 현대차의 브랜드 관리가 무엇인지 바닥부터 다시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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