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이 1190원 밑으로까지 수직하락하자 정부가 이제는 환율하락의 속도 뿐 아니라 환율의 절대수준에까지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달러 약세현상이 불가피한 대세라고는 생각했으나, 내심 예상했던 수준 밑으로까지 떨어져버렸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특히 정부는 일본과 우리의 펀더멘털 차이가 부각되면서 원화가 엔화와의 연동을 탈피, 홀로 지속적인 강세를 이어갈 가능성에 대해서도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정부는 그래서 지금까지 내놨던 것 이외에 추가적인 대응책을 다각도로 검토하며,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진의를 의심케 하는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이 잇따라 시장이 혼란스러워 하는 한편 당국의 안정책도 제효과를 못내고 있다.
◇"환율 절대수준 너무 낮다" = 정부가 환율하락의 속도만이 아닌 수준에까지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지난달 초순부터.
전윤철 부총리는 지난달 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는 원화절상 속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면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절상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레벨`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것.
잇단 구두개입과 외평채 추가발행 방침 등을 밝히며 환율 하락세를 막기 위한 전면전을 펼쳤던 전날 달러/원 종가는 1227.20원이었다. 하지만 9일 오전종가(1186.5원)은 당시보다도 무려 40.7원 밑으로 떨어진 상태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분석한 7월 현재 적정 수준 1235원에 비해서는 48.5원이나 낮은 수준이다.
당국자들은 정부의 우려대상이 `속도`에서 `수준`으로 옮겨진 사실을 최근들어 더욱 강조하고 있다.
◇원화 `나홀로 강세` 가능성 큰 걱정 = 현재 해외 주요시장에서 예상하는 달러/엔 1차 저점은 115엔 수준. 시오카와 마사주로 일본 재무상의 지난주말 발언이 근거다. 현재의 엔/원 수준이 지속된다면 이 경우 예상되는 달러/원은 1150원 안팎 수준.
그러나 정부의 고민은 그 이후다. 달러/엔의 하락세가 멈춰선 뒤에서 달러/원의 하락관성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우리나라의 경제 펀더멘털이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달러화 하락에 가속도가 붙기 직전까지만해도 엔/원은 980원을 위협했었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외국인 매수확대 움직임이 대표적인 사례다.
약 2주간 1000원대를 지키던 엔/원 환율은 9일 오후 들어 990원대로 떨어졌다. 달러/원의 지속적인 하락에도 불구, 정부를 안도케 했던 엔/원이 걱정거리로 다시 떠오른 셈이다.
◇외환 수급안정 추가대책 강구 = 이에따라 정부는 지금까지 제시된 수급조절 대책 외에 추가적인 외환시장 안정대책을 강구중이나, 구체적인 복안은 내비치지 않고 있다.
일단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외평채 조기, 집중발행. 정부가 올해 안에 더 발행할 수 있는 외평채는 이달 7000억원을 포함해 총 2조1000억원으로 이를 집중할 경우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발행총량을 늘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총량을 늘리기 위해 추경을 편성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해외투자 규제를 풀어 외환수요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으나, 달러 약세기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약효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데 고민이 있다. 기업의 외채 조기상환을 유도하는 방안 역시 달러/원 하락이 예상되는 시점에서는 제대로 먹히기 어려워 보인다.
◇환율 하락을 바라보는 정부의 이중적 시각 = 환율하락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도 정부는 동시에 `나쁠 건 없지 않느냐`는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정부의 진의가 의심받으면서 시장개입 효과도 떨어지고 있다.
"원화가치가 급상승, 수출과 관련해 우려하고는 있으나, 큰 문제는 없을 것"(4일) "달러/원 환율의 최근 하락세는 우리경제가 상대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것을 반영한 것"(지난달 28일) "원화절상이 설비도입에는 좋은 측면도 있다"(지난달 21일) 등의 전윤철 부총리의 발언이 최근 잇따랐다.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도 "환율에 여유가 있으면 기업들의 긴장도가 낮아진다"면서 "환율문제를 받아들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고, 이기호 청와대 경제복지노동 특보는 9일 "환율문제는 시장원리에 맡길 것이며, 정부는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반기 수출은 15%이상 반등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대외 구매력이 그만큼 커져서 좋은 것 아니냐`는 투의 말도 흘러 나온다.
외환시장에서는 "수출이 걱정된다"고 환율을 잡고, 주식시장에서는 "수출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가를 달래야 하는 정부의 고육책으로도 보인다.
최근의 환율변동이 수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아직 지표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정책마련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