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입은 손실이 적게 잡아도 140조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쟁과 뒤이은 대러 제재 등으로 인해 러시아 사업을 축소하거나 매각·철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북극해의 러시아 유전.(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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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76개 유럽 기업이 러시아 사업에서 최소 1000억유로(143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봤다고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600개 유럽 그룹의 연례 보고서와 올해 재무제표 등에서 드러난 자산 손실·환 손실 등 직접적 손실을 분석한 결과다.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같은 간적적 손실을 더하면 실제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키이우경제대학에 따르면 전쟁 전 러시아에서 1871개 유럽 회사가 진출해 있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우크라이나 전쟁 후 러시아 사업을 철수했다. 대러 제재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반(反) 서방 정책 등 정치적 리스크로 인해 정상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 콘트롤리스크의 나비 압둘라예프는 “러시아 철수로 많은 돈을 잃더라도 남아 있으면 더 큰 손실을 볼 위험이 있다”며 “전쟁이 시작될 때 ‘줄행랑’이 기업이 가장 좋은 전략이었다. 빨리 러시아를 떠날수록 손실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본 부문은 러시아 진출이 활발했던 석유·가스 등 에너지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셸, 토털에너지 등 빅3의 손실만 해도 406억유로(약 58조원)에 이른다. BP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255억달러(약 33조원)에 달하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 지분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토털 역시 야말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등에서 철수하면서 148억달러(약 19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봤다.
러시아 정부가 대러 제재에 대한 보복에 나서면서 유럽 기업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4월 비우호국의 자산을 러시아 당국의 ‘임시 통제’하에 두는 법안을 마련했다. 러시아 정부가 비우호국 자산에 대해 자산 매각을 제외한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원소유주가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압류나 마찬가지다. 이 법에 따라 에너지·유틸리티 회사인 독일 유니퍼SE와 핀란드 포르툼, 프랑스 유제품 회사 다논과 덴마크 맥주회사 칼스버그의 러시아 사업부가 러시아 정부 통제하에 들어갔다.
안나 블라슈크 키이우경제대학 연구원은 “아직 러시아에 남은 회사는 사업을 정리하는 게 낫다”며 “누구나 러시아 사업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