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세계 최초 트랜지스터 TV 개발(59년), 세계 최초 CD 개발(82년), 세계 최초 8㎜ 캠코더 개발(90년)이라는 신기록을 이어가던 소니의 계보를 이은 제품이다. 그러던 소니가 90년대 후반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98년 소니에 입사해 2005년 퇴사한 미야자키 다쿠마는 `소니 침몰`이라는 책에서 소니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길지 않은 근무기간이지만, PC브랜드인 바이오(VAIO)의 기획자로 일하면서 소니의 중심부를 지켜봤던 그는 "기술경시 풍조가 만연돼 조직이 급속히 망가졌다"고 설명한다.
특히 시장의 변화를 예측 못한 소니는 경쟁에서 점차 밀려났다는 것. 워크맨의 자리는 애플의 아이포드가, 브라운관 TV 자리는 삼성의 LCD·PDP TV가 각각 대체했다. 소비자의 만족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경쟁에서 영원한 강자가 없듯,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새로운 성장엔진을 지속적으로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임영호 상무(플래시메모리 설계팀장)은 지난해 단 하루의 휴가를 다녀왔다. 16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준비 때문이었다.
낸드플래시는 캠코더와 디지털카메라 MP3 등의 저장장치로 사용되는 메모리 칩. 삼성전자의 캐시카우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품목이다.
임 상무팀이 세계 최초로 16기가 낸드플래시를 개발한 것은 2005년 9월. 제품개발은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기 때문에 밤낮과 주말을 잊고 양산준비에 매달려왔던 것이다.
임 상무는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가 없었더라면 플래시메모리 개발에 뛰어들지 못했을 것"이라며 "삼성의 시스템은 엔지니어가 자기 길을 열어갈 수 있는 최고의 토양"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4년초 LG전자에서는 직원 20명이 '에베레스트' 앞에 모였다. 정확하게는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테스크포스였다. 목적은 새로운 개념의 타임머신TV 개발.
그러나 영업이나 마케팅 부서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개발 가능성도 높지 않고 개발된다 해도 시장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
최상엄 책임연구원은 바로 이 에베레스트 한 가운데 있었다. 부수고 조립하고 실험하기를 9개월. 글자 그대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맞먹을 만큼 혹독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복잡해진 테스트, 성능측정 등 각 테스트가 있을때마다 20대의 대형 PDP TV를 뜯고 다시 만들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상품기획팀 마케팅팀 디자인연구소와의 고도의 커뮤니케이션과 협동관계 유지도 힘들었다. 이런 고난의 행군끝에 탄생한 게 세계최초의 타임머신 TV.
출시 1년반만에 전세계로 50만대로 팔려나가는 대히트작이 됐다. LG전자는 유럽에서만 올해 평판TV 400만대, 전세계적으로는 1500만대(LCD TV 800만대, PDP TV 250만대 포함)를 판매할 계획이다. 타임머신TV 공급 국가를 지난해 60개국에서 올해는 80개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자 반도체 디스플레이산업이 새로운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미래 먹거리를 찾기위한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제품이 탄생하고, 캐시카우로 떠오른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흐려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작업이 이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반도체와 디지털TV 등 디지털미디어, LCD 등 디스플레이에서 신화가 만들어져왔다.
작년 우리나라의 수출은 3260억 달러. 이 가운데 전자 전기제품이 1770억 달러를 차지했다. 전체 수출의 54%다. 반도체만 놓고보면 370억 달러, LCD패널 145억 달러, 휴대폰 중심의 무선통신이 270억 달러, 가전제품이 146억 달러다.
인구 7000만명의 에티오피아 경제규모가 77억 달러. 2년전인 2005년 삼성전자 종업원 7만명이 생산해 낸 매출이 그 9배가 넘는 720억 달러다.
LG전자의 작년 글로벌매출은 4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좋은 기업 1, 2개가 인구 7000만명 후진국 경제규모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래 먹거리, 성장동력을 찾기위해 몸무림치는 기업들이 얻어내고 있는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286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절반 이상(54.5%)의 기업들이 "향후 3년 이후의 미래수익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간을 늘려 10년 뒤 먹고 살 사업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불과 3개사(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 몇 년간 40%대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보이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해냈던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가 가격급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휴대폰은 글로벌 상위 기업과 경쟁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차세대 먹거리라 불렸던 LCD와 PDP도 끝없는 경쟁을 해야만 살아남는 레드오션으로 바뀌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글로벌 전자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은 그래서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라는 특명을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지난 1월25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대회의실. 윤종용 부회장을 비롯한 국내외 사장단과 주요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10시간 가까이 진행된 경영전략회의에서 경영현황과 사업전망을 보고 받고 토론을 펼친 윤 부회장이 다시금 마이크를 잡았다.
"반도체 이후 삼성전자를 이끌어갈 차세대 사업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각 총괄사업부 별로 한가지씩의 혁신 제품을 마련하겠다던 계획은 잘 되고 있습니까"
이내 엄숙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윤 부회장은 "세계 경쟁사를 압도하고 그들의 사업을 포기시킬 정도의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아야 합니다"고 당부했다.
반도체와 정보통신의 뒤를 이을 신사업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의 성공이 미래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경고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초 8대 성장 엔진으로 ▲고용량 메모리 ▲차세대 디스플레이▲차세대 이동통신 ▲디지털TV ▲차세대 프린터 ▲시스템LSI ▲차세대 저장장치 ▲에어컨트롤 시스템 등을 선정했다. 메모리 반도체와 휴대폰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를 다변화해 보겠다는 복안이다.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삼성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 않으면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의 반영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프린터와 시스템LSI 분야에서의 1위 도약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시장 규모에서도 프린터는 연 130조원 수준으로 휴대폰(연간 110조원), 메모리반도체(연간 40조원), 디지털TV(연간 60조원)를 능가하는 큰 시장이다.
현재 삼성전자내 영업이익률만 놓고 봐도 프린터사업부는 반도체, 휴대폰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인 시스템LSI 사업도 현재 디스플레이 드라이브IC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33%로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비메모리 분야가 워낙 넓은 만큼 앞으로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설 수 있는 분야도 많다.
삼성전자는 시스템LSI 전용라인인 300mm 팹의 본격 가동을 통해 앞으로 CMOS 이미지센서, 칩 카드IC,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등을 1위 제품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LG, R&D 강화..두드려면 열린다
지난 14일 평택 LG전자 생산기술원. 'LG연구개발성과 보고회'를 위해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각 계열사 CEO들이 모였다.
구 회장은 "경쟁이 치열해지고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R&D 인력의 도전과 창의가 빛을 발한다"고 밝혀,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투자를 강조했다.
특히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치중하기보다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고 고객친화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는게 LG전자의 방침이다.
현재 집중하고 있는 휴대폰과 디스플레이 등 중점사업에서 차세대 기술을 확보하는 동시에 카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어컨, 홈네트워크 등 신사업에서는 특허를 확보하기로 했다.
텔레매틱스와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강화한 카인포테인먼트(Car Infotainment) 사업은 현대자동차의 AV 및 텔레매틱스 제품 개발과 연계, 상품 기획에서부터 설계·개발에 이르는 부문까지 공동 연구중이다.
텔레매틱스의 주된 기능이 위치확인이니 지리정보 뿐만 아니라 향후 자동차에서도 집에서와 같이 홈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진일보된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을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시스템에어컨도 가정용과 중앙공조의 장점을 살린 차세대 에어컨을 개발했다.
글로벌마케팅을 전담할 시스템에어컨 사업팀을 지난해 신설, 현지 적합제품 개발에서부터 생산, 판매 등 현지 완결형 시스템 구축도 준비중이다.
LG전자는 이 분야 R&D 인력도 현재 1300명 수준에서 2010년 2000명으로 확대하고, 올해 신규 해외생산기지에도 전략적으로 시스템에어컨에 많은 비중을 두기로 했다.
LG전자는 또 경쟁사들과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기술표준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업체간 경쟁이 치열한 이동통신, 디지털TV, 멀티미디어, 홈네트워크 분야에는 전체 연구개발(R&D) 투자금액의 80%를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3세대 이동단말기 제품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3.5세대에서 4세대에 이르는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또 이미 확보하고 있는 디지털방송 원천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고 차세대 광스토리지, 코덱 등 미디어 분야의 지식재산권을 강화해 로열티 수익을 늘릴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