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위원장은 지난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에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 공식 의견을 밝혔다. 그는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일견 이해가 되지만 헌법에서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 사고와 관련한 분쟁이 생기면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조정안을 내놓는다. 그런데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은 소비자와 금융사가 모두 동의해야만 재판상 화해의 효과가 성립한다. 어느 쪽이든 수용할 수 없다고 선언할 수 있다. 금감원의 분쟁조정위원회는 강제력이 없다.
윤 원장이 추진하려는 ‘편면적 구속력’은 불복할 수 있는 대상을 소비자로만 한정하자는 주장이다. 소비자는 조정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복을 선언하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금융사는 조정안을 무조건 따르도록 ‘한쪽 편에서만 구속력’을 갖도록 하자는 게 ‘편면적 구속력’이다.
금융회사가 불복해 법원 소송으로 가는 것을 제한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훨씬 유리한 제도다. 영국·독일·호주·일본 등에서 소액분쟁 사건에 대해 이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윤 원장이 ‘편면적 구속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언급한 건 금융사와 일련의 갈등을 거치며 분쟁조정이 실효성을 갖춰야 한다고 판단해서다. 더 이상 감독당국 권위만으로 금융사 수용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 6월 내놓았던 라임 무역펀드 4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시 하나은행·우리은행·미래에셋대우·신한금융투자 등 판매사 4곳에 원금 100% 반환 결정을 내렸지만, 판매사들은 결정시한 연기를 요청했다. 윤 원장의 ‘편면적 구속력’ 발언은 그때 나왔다. 금융권에선 판매사에 분조위 수용을 압박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했다. 결국 4개 판매사는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을 수용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김은경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이 이 제도 도입에 적극적이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0만원 이하 분쟁사건에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내용의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피해를 입은 금융 소비자가 모든 경우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최소한 2000만원 이하의 사건에 대해서만이라도 편면적 구속력이 도입되어야 금융 소비자가 실효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적용기준을 금액으로 정하면, 금액은 소액이지만 법리적 중요성이 있는 사건에 대한 판례형성 및 법리발전 기회를 차단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이 엿보인다. 윤 원장의 발언은 분조위 결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원론적 차원의 주문으로, 편면적 구속력 부여는 여러 방안 중 하나라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 문제는 우리가 할 수는 없고 국회에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선 이 제도 도입 문제를 두고 의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여당에서도 금감원 분조위가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토록 제도 보완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분조위 민간위원 위촉 때 전문가 추천 의무화 △분조위 인력 풀(Pool) 현대 30명에서 추가 확대 △분쟁조정 관련 감독규정 제·개정 때 분조위 의결 △분조위 회의에 금융기관과 피해자 참석 등을 제안했다.
윤 원장은 제도 개편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