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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서울대 졸업 후 외교관으로 활동 중인 큰딸, 오라클·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업을 거치며 일하는 둘째 딸, 28세에 국내 항공사 과장을 단 셋째 딸을 길러 낸 박철수 목사. 이야기만 들으면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녀를 키웠을 걸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박 목사는 27년간 전북 익산 함라면에 위치한 봉곡교회에서 사역하며 세 딸을 키웠다. 주민 60명 남짓한 시골 동네에 있는 교회의 월급은 35만원에 불과했다. 20년 전임을 감안해도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을 키워낸 것이다.
자녀교육을 위해 다들 ‘강남으로’ 몰려가는 요즘 세태에 부모라면 누구나 탐낼 만큼 세 자녀를 반듯하게 성장시킨 박 목사를 이데일리가 만났다. 박 목사는 최근 어려운 형편 속에서 세 자녀를 기른 경험을 담은 ‘믿음나무에서 꽃피운 세 딸’(그린아이)을 출간했다.
“정말 힘들 때는 아이들 속옷 사줄 돈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박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처음 익산에 있는 교회에 도착했을 때 9평 남짓한 사택에서 살았다”며 “겨울에는 난방이 되지 않아 건물을 온통 비닐로 둘러싸야 했고, 여름에는 지붕 슬레이트가 열을 받아 집안이 펄펄 끓어 밤 9시에나 겨우 들어가곤 했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쥐’였다며 “아이들이 쥐를 싫어했는데 약 올리기라도 하듯 천장에 우르르 몰려다니곤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떤 환경이든 자녀에 힘 되는 부모 역할 중요
힘든 점만 있던 것은 분명 아니다. 시골에서 아이들을 기르다 보니 장점도 있었다. 그는 “도시만큼 치열하지 않으니 아이들이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던 건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 학년의 학생이 20명 남짓한 작은 학교였는데 교장선생님이 풍물놀이 등 도시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특별활동을 많이 진행했다”며 “오히려 이런 부분이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
직업이 목사인 아버지의 역할도 컸다. 그는 “목사가 예배에서 설교하는 건 논문발표와 비슷하다”며 “덕분에 아이들의 논리적 사고가 잡히고 어릴 때부터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된 듯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꾸 좋은 말을 듣다 보면 심성도 착해진다”며 웃었다.
박 목사는 어떤 환경에서든 부모가 자녀에게 힘이 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뒷바라지를 잘해줘도 자녀교육은 쉽지 않다”며 “내 경우에는 가족들과 대화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서로 격려하고 믿음을 주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이어 “갈수록 팍팍해지는 사회에서 우리 가족 이야기가 자녀를 키우는 가정은 물론, 고군분투하는 농·어촌 교회에 작은 힘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