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비중이 7%이상)에서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비중이 20%이상)까지 가는데 프랑스가 154년, 미국이 94년이 걸리는 반면 우리나라는 불과 26년 안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됐다.
프랑스의 비해서는 6배, 미국보다는 4배 가까이 빠르고 대표적인 노인국가인 일본에 비해서도 10년이나 빠른 것이다. 14세 미만 인구 대비 고령인구의 비율인 노령화지수도 2020년에 125.9로 상승해 미국· 영국·프랑스보다 높아지고 2050년에는 429.3으로 일본과 독일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고령화에 따르는 복지지출을 정부의 재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는 우려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 공적부문과 민간부문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특히 이러한 역할분담은 민간부문의 차세대 먹거리라는 기회로 다가올 수 있어 발빠른 대비가 요구되고 있다.
◇ 국가재정만으론 연금·복지제도 지탱 `역부족`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등의 변화는 노동력 저하, 저축 감소, 투자 위축, 재정수지 악화 등을 유발해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인구고령화가 지속될 경우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연평균 4.56%(2003~2010년)에서 4.21%(2010년대), 2.91%(2020년대), 1.60%(2030년대), 0.74%(2040년대)로 점차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동시에 국가 채무비율도 가파르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에 따른 건강보험·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은 복지 지출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2050년 38.2%에 달하면 보건 및 사회복지 분야 재정지출은 2009년 GDP 대비 9.41%에서 2050년에는 22.32%로 12.91%포인트나 급증할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초 한국조세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세부담률(GDP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율)을 20.8% 수준(2013년 추정치)으로 유지할 경우 2050년에는 국가 채무비율이 유럽 국가들 수준(2050년 평균 116~125%)인 115.6%로 치솟게 된다. 결국 국가 재정만으로 복지수요를 충당하려면 빚을 내서 연금과 복지제도를 지탱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에 대한 재정부담을 민간 금융시장의 역할로 덜어줘야하고, 이를 금융시장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개인의 자산 중 금융자산의 비중이 낮고 비금융자산(부동산) 비중이 높았지만 고령화 사회로 진전될수록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예적금·연금 등 안정적인 금융자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령화 사회의 도래는 국내 금융시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며 "고령화 사회의 진입을 금융시장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정책방향을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시급한 분야는 연금이다. 연금은 노후생활의 주요 수입원이지만 노후를 보장할 만큼 충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금(공적+사적) 소득대체율은 국제적 권고 수준인 70~80%에 훨씬 못미치는 45%에 불과하다. 미국은 89%, 영국 80%, 일본 70% 수준이다.
일반 근로자가 은퇴 이후 기대수명까지 생존한다면 연금소득 보다 소비지출 규모가 더 커져 고령화 리스크에 심각하게 노출될 수 있다. 즉 연금소득만으로는 노후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초적인 생활비 및 의료비를 충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따라 현행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3가지 노후 보장체계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사적연금의 비중을 늘리도록 연금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김병덕 연구위원은 세제혜택 확대를 강조했다. 그는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연금상품은 조기인출에 대한 페널티가 있기 때문에 세제혜택 등 제도적인 우대정책 없이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어렵다"며 "연금상품에 대한 세제혜택 확대는 단기적인 세수감소가 발생할 수 있지만 개인의 연금자산 확대로 이어져 중장기적으로 재정 지출요인이 감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도 "현재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합쳐 연간 4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며 "국민들의 연금보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분리해 별도의 세제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 보험업계 `고령화=기회`
보험업계는 고령화를 보험산업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보고 개인연금의 세제혜택 강화를 건의하는 한편 다양한 노후소득 및 의료보장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리스터연금제도다. 리스터연금은 개인연금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연금제도로서 연금가입을 위한 유인수단으로 정부보조금(1인당 200유로를 매년 보조, 자녀 1인당 200유로 추가 지급)과 세금 공제혜택을 부여한 상품이다. 2002년 도입 이후 3년만에 643만명이 가입했다. 미국은 장기간병보험료에 대해 연령별로 연간 340~4240달러까지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보험사의 상품개발 노력이 빛을 발한 사례는 영국이다. 영국 보험사들은 보통의 건강한 사람보다 위험도가 높은 비건강체(비표준체)를 대상으로 한 '표준하체 연금보험'을 개발했으며 관련 상품의 판매가 급성장하고 있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현재의 연금사망률은 피보험자의 건강상태, 환경 등과 관계없이 단일 사망률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외국의 경우 피보험자의 건강지표, 환경요소 등에 따라 사망률을 차등화한 다양한 연금상품을 판매중"이라며 "앞으로 건강과 환경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사망률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의 첫 결과물은 올해 안에 나올 계획이다. 보험사들은 현재 노인이나 어린이 대상 연금보험을 개발하고 있다. 또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보완하는 실손형 간병보험도 상반기에 새롭게 선보일 상품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으로 인해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게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적 간병보험이다. 노인의 상태에 따라 요양등급(1~3등급)을 부여하고 요양시설 이용시 요양급여의 80%를 지원한다. 실손형 장기간병보험은 요양급여를 받는 노인들이 부담해야 하는 20%의 자기부담금을 보장해 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를 받은 대상자는 노인 인구의 5% 정도로 추산된다"며 "요양급여 외에 자기부담금을 보장해주는 실손형 간병보험이 출시되면 요양보험 혜택을 받는 노년층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