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권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넘쳐나는 돈` 입니다. 막상 내 호주머니 속엔 찬바람만 가득한데 여기저기서 돈, 돈, 돈, 말들이 많습니다.
시중 유동성을 잡기위해 한국은행이 9개월동안 올린 금리만 1.25%포인트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들에 막혀 금리인상의 효과는 발휘되지 않았고, 부풀어가는 유동성에 대한 우려는 해를 넘기며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작년 한해 내내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부동산 광풍`도 바로 이 유동성 팽창과 연결돼 있습니다. 대출로 풀린 돈들이 집으로, 땅으로 흘러갔습니다. 부동산 시세표는 자고 나면 새로 고쳐져 있었고, 몇억쯤은 우습게 회자됐던 해였습니다.
새로 문을 여는 모델하우스에 와글와글 모인 사람들과 밤을 새워가며 청약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역과 평수로 나뉘어 내 몫에 아귀다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익숙해져갔습니다. 옆집 누구네, 친척 누구네 돈벼락 소식에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 버리는 사람들도 흔했구요.
절대적인 비극보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 참담한 법이지요. 차곡차곡 저축해서 몇년안에 내집 마련하겠다는 소박한 꿈들은 끝도없이 공허해졌습니다. 정직하게 월급받아 알뜰살뜰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일로 전락했습니다. 아이들 사이엔 집 평수와 차 종류가 내편네편을 가르는 기준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서점에는 돈 버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선 책들이 즐비합니다. 각종 부동산과 주식 투자방법들이 고수익을 보장하며 명함을 내밉니다. `일단 많이 벌고 보자`는 풍토야 유사 이래 계속 있어왔겠지만, 갈수록 일반화되고 정당화되고 있다고 개탄하는 사람은 저 뿐일까요.
문제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에만 관심있을 뿐, 정작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왜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벌어야 하며,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철학 없이 무조건 많이 벌기에만 관심이 집중돼있다는 것이죠.
지금 시중에 풀리고 있는 돈들이 어느 곳에서 어떤 현상으로 결말을 맞을지 궁금합니다. 걱정도 되고요.
이런 와중에 한국은행이 고액권 발행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오는 2009년 상반기중 5만원권과 10만원권을 새로 발행하겠다고 합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화폐의 앞면을 누가 장식하느냐 입니다. 여성계와 과학계를 비롯한 각계 각층에서 저마다 이유있는 인물들을 내세워 앞면을 선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초등학생도 알만한 유명한 인물들부터, 역사속에 묻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낯선 인물들도 꽤 나왔더군요.
장군도 좋고 과학자도 좋지만, 이번 기회에 돈을 버는 것 못지 않게 번 돈을 어떻게 쓰는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시켜보는 건 어떨까요.
고액권 앞면에다 `돈에 관한한 가장 존경할 만한` 분을 넣는거죠. 누구보다도 돈을 잘 번 인물이면서도, 허투루 쓰지 않고 아름답게, 가치있게 사용한 인물 말입니다.
`박수 받으며 돈 쓰는 방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