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환율을 920원대로 떨어뜨린 영광(?)을 이들에게 돌립니다. 그러나 이들중 영광을 받고자 하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들 어쩔 수 없었거나 `내탓`이 아니라고 하는군요
정부는 투기꾼들 때문이라며 연일 `쏠림현상`만을 되풀이하고 있고 조선업체는 환 변동위험을 피하자니 곧바로 헤지(선물환 매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오히려 큰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다른 수출업체들은 환율이 떨어지니 덩달아 팔 수 밖에 없었다며 오히려 하소연을 하네요.
그러면 환율을 끌어내린 주역은 누구입니까? 답답하네요.
올해 환율 급락의 시나리오를 보면 이렇습니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우리 경제의 회복 흐름은 당연히 통화(원화) 강세(환율 하락)를 이끈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경제가 튼튼해지면 통화 가치가 올라가는게 당연한 것이니까요.
1분기 6% 이상의 고성장을 하면서 결국에는 환율 1000원이 붕괴되더니 네자릿수 환율은 점차 멀어져갔고 저점은 계속해서 낮아졌습니다. 이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쪽이 바로 역외 투기세력입니다. 이들은 헤지 펀드 등 글로벌 시장에서 틈이 보이면 여지 없이 공격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 회복에 대한 그림은 원화 투기에 최적의 찬스였습니다.
여기에 합세한 것이 바로 중공업체를 비롯한 수출업체들입니다. 환율이 내려가는 것을 보니 당연히 위험하다 여겨 달러를 일단 팔아 치워야 한 것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라는 대목입니다. 1000원대, 980원대, 960원대에서 끊임없이 달러를 팔았던 업체들의 환율 담당자들이 추가로 환율이 오르면 오히려 이에 대한 질책이 두렵다며 환율이 오를때마다 달러를 공격적으로 팔아 버린 것입니다. 930원, 940원 환율이 갑자기 960원, 970원 혹은 그 위로 오르게 되면 예전에 팔아버렸던 달러들이 큰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런 양상들이 올해 외환시장에서 포착됐습니다.
환율 전망은 시쳇말로 `신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지금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큰 위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5월 이후 수출업체들의 달러 매도 행태는 과도했다는 것이 외환시장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지적입니다.
환율이 떨어지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우리 원화의 구매력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수입물가도 싸져서 내수 부양에도 도움이 되지요. 해외에 나가서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소 수출기업들은 정말 상당히 어려운 지경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튼튼한 대기업들은 환율 800원대에 맞추어 내년 경영계획을 짠다고 하던데, 중소수출기업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지요.
외환을 직접 운용하는 딜러들도 이럽니다. "사실 돈 벌자고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환율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내리니 국가 경제를 위해서 좀 두렵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외환시장을 취재하는 기자는 환율 하락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는 겁니다. 물론 최근 정부의 개입으로 환율이 반등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동안 국내에 달러를 공급했던 원천인 경상수지가 균형으로 가고 있고, 내년에는 적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국은행이 그러더군요. 그리고 은행의 대규모 단기 해외차입도 주춤해졌습니다. 기업들의 선물환 매도도 11월 들어 급감했다고 합니다. 글로벌 달러 약세라는 부정적인 여건은 여전하지만, 그와 상반된 움직임도 있는 것이지요.
올해를 되돌아보면서 저질러졌던 각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과도했던 행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필요 이상으로 환율이 급락하지 않아 이 글이 정말 환율 급락의 에필로그(epilogue)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 잊을 뻔 했습니다. 환율 하락에 대해 특별히 경의를 표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