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고 전 총리는 16일 일문일답 형식의 서면 자료에서 “기존 정당의 벽이 높아 현실정치의 한계를 느꼈다”고 밝혔다. 통합신당을 추진하려 했지만 현실 정치인들의 참여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자신이 주도하는 통합신당에 참여할 것처럼 했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에게 강한 불만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총리는 최근 측근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국회의원들이란 참…”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일부 의원들이 신당추진모임인 중도포럼 발족을 추진 중이었는데, 언론에 ‘고건 신당 모임’으로 보도되자 상당수 의원들이 발을 빼는 바람에 무산된 것과 관련된 반응이었던 것 같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 선거 정치사에 제3후보나 선거용 정당 설립의 전철을 결과적으로 초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고도 밝혔다.
둘째, 지난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 급속히 떨어진 지지율도 중도 사퇴의 원인으로 보인다. 고 전 총리는 작년 초만해도 지지율 1·2위를 다퉜지만, 현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지지율의 3분의1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는 자신의 대북·경제정책 등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 지지층 이탈을 가져왔다는 평가와 관련, “저는 중도 실용개혁을 지향하는 실용주의자”라며 “내 입장에 대해 여러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현재 구도에서 지지율을 반등시킬 뾰족한 묘수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도 ‘고(GO)’를 외치기에 부담스런 대목이다.
‘추대 가능성’만 기다린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추대 형식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새로운 정치세력의 통합에 현실정치의 한계를 느꼈다”고 밝혔다.
셋째, 건강 문제와 가족들의 만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 전 총리는 중병설에 대해 “지난 수개월간 호흡기 질환을 치료받아 왔고 현재 완치 단계”라고 설명했다. 작년 폐에 염증이 있었고, 올 초엔 독감으로 고생을 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여기에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의 갈등도 변수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작년 말 노 대통령의 “실패한 총리” 발언에 대해 고 전 총리는 이례적(?)으로 신속·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후 고 전 총리는 공식 일정없이 칩거한 채 장고(長考)에 들어갔고, 이날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편 고 전 총리는 향후 일정에 대해 “평범한 국민으로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희망연대 공동대표직과, 싱크탱크였던 ‘미래와 경제’ 자문위원직도 사임할 계획이다. 우민회·중청련 등 자생적 지지단체는 “각 단체의 의사결정 기구에서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