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표준계약서를 놓고 정부와 각을 세웠던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가 이번엔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이하 출판전산망)을 놓고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출협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저자 출판사 도서판매정보 공유시스템’을 7월부터 시범운영하기로 해 출판계 혼선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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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호 출협 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열린 출판 현안 기자간담회에서 ‘저자 출판사 도서판매정보 공유시스템’을 7월부터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현재 출판사들이 교보문고·예스24·알라딘·영풍문고 등 대형서점의 SCM망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도서 판매수량 정보를 통합해 저자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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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와 출판진흥원은 출협의 발표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출협이 밝힌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며 “당장 출판전산망과 충돌할 부분은 없을 것 같지만, 어떤 방식으로 시스템이 운영되는 건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출판진흥원 관계자는 “2개의 서로 다른 전산망이 생기면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출협 시스템과 같은 기능을 출판전산망에도 구축하려고 했지만 출판계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쉽지 않았다”며 “다음주 출협을 대상으로 출판전산망 시연회를 갖는데 이 자리에서 출협 시스템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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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협과 정부는 올해 초 출판계 표준계약서를 놓고 대립했다. 문체부의 출판계 표준계약서 도입에 맞서 출협이 출판사 의견을 반영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표준계약서를 발표한 것이다. 이번 출협의 ‘저자 출판사 도서판매정보 공유시스템’도 정부의 출판전산망에 맞불을 놓는 것 같은 모양새다.
출협과 정부가 주도권 다툼을 하느라 정작 더 중요한 논의는 빠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소 출판사 대표는 “판매량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출협과 정부가 주도권 다툼만 하고 있다”며 “책 판매량 이면에 있는 위탁 시스템·복잡한 유통구조·결제 시스템 등 문제에 대한 고민은 쏙 빠져있어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작가들은 어떤 통합전산망이든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대현 한국작가회의 저작권위원장은 “정부든 출협이든 작가들이 투명하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반복되는 인세누락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주체가 누구인가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시스템 자체가 정착될 수 있도록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과거 블랙리스트 등으로 판매 정보를 공개하기 조심스러운 출판계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통합전산망이 두 개가 돌아가는 건 비효율적”이라며 “하나의 통합전산망으로 합치되, 운영 주체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어떤 정보를 수집해서 누구에게 어디까지 공개할지의 정보 공개 원칙부터 감시 역할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