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여자 우주선장` 아일린 콜린스

  • 등록 2005-09-06 오후 3:30:47

    수정 2005-09-06 오후 8:31:13

[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미국의 철학자 헨리 소로우는 "과학자의 지식은 널리 쓰이도록 마당에 내다 놓은 목재와 같다. 잘하면 이곳저곳에 쓸모가 있을 수 있으나 쉽게 썩어 버리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굳이 소로우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은 흔히 과학자에 대해 "이성만 신봉하는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 이라는 식의 선입견을 갖곤 한다.

기자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 중년 여성을 만나고 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학자가 철학자나 종교인의 또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준 사람. 바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 호의 여선장 아일린 콜린스(48)다.

콜린스는 디스커버리 호 비행을 같이 했던 스티븐 로빈슨, 찰스 카마다와 함께 지난달 30일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사 박물관이 주최한 소위 `어린이들과의 대화` 자리였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제곡에 맞춰 등장한 콜린스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세계 각국의 취재진이 대거 몰려왔지만 질문 기회는 어린이들에게만 부여됐다.

콜린스와 그의 동료들은 "우주에서 먹는 음식이 맛있나요" 류의, 다소 유치할 수도 있는 어린이들의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변했다.


콜린스는 우주 왕복선의 비행사가 되기 위해 평생 구도자의 길을 걸어온 듯한 이미지를 풍겼다. 그녀의 모습도 그랬지만 답변 역시 매우 평범했고 소박했다. 그러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노력 만으로 현재의 위치에 올라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어서 가슴에 여운을 남겼다.

1956년 11월 뉴욕 주 엘미라 생. 우리 나이로는 벌써 오십에 애도 둘이나 있는 `아줌마`다. 하지만 예비역 공군 대령인 그녀는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승무원 및 선장이기도 하다.

`최초의` 운운하는 식상한 수식어를 제외해도 콜린스는 충분히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피자 가게에서 학비를 벌어야 했던 콜린스는 고교 졸업 후 재정 문제 때문에 우리 나라의 2년제 대학 격인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한다. 이후 장학생으로 시라큐스 대학에 편입해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시라큐스 대학 학군단(ROTC)을 거쳐 1979년 공군 비행사가 됐고 스탠포드 대학과 웹스터 대학에서 각각 과학 및 우주시스템 관리 석사 학위를 땄다.

1990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입사한 콜린스는 한 해 뒤 우주비행사로 뽑힌다. 이후 1995년 2월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조종사로 8일 동안 첫 우주비행을 경험한다. 세 번째 우주비행이자 여성으로는 최초로 선장을 맡았던 1999년 7월 비행 당시에는 전기 결함으로 비상착륙까지 고려해야 했던 위기 상황을 침착하게 극복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컬럼비아 호 참사 이후 첫 우주왕복선인 디스커버리 호의 비행을 책임질 적임자로 꼽혔다.

콜린스는 이날 내내 `열정(passion)`과 `협력(cooperation)`을 강조했다. 자신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우주비행사가 되기를 꿈꿨으며 한 번도 이를 의심해 본 적이 없노라고 말했다. 자신의 일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기에 일을 할 때마다 놀이(play)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대학 입시 수석자가 말하는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과외는 안 했어요" 류의 답변이었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협력`은 콜린스가 특히 강조한 부분이다. 그녀는 동료 비행사, 엔지니어, 리서처 등 이제껏 같이 일해왔던 수 만명의 사람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일해 본 경험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교훈(valuable lesson)이었다고도 강조했다.

협동심이 우주비행사로서 선발되는 데도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답변도 내놨다.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는 "공부, 협동심, 건강" 이라고 답했다. 과학과 수학 공부에 매진하고, 학교에서 팀워크 활동을 활발히 해 협동심을 키우며, 알콜과 같은 유해한 음식 섭취를 줄여 육체적 건강을 지키는 데 노력하라고 강조했다.

콜린스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유럽의 알프스 산맥, 남극 등을 눈으로 직접 보는 기분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콜린스는 "아름다운 지구를 보고 나니 우리가 사는 이 곳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깨닫게 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콜린스의 인기는 연예인 못지 않았다. 질문 시간이 끝난 후 자신의 아이와 콜린스를 악수시키거나 싸인을 받아주려고 어른들이 벌이는 몸싸움도 치열했다. 많은 취재진들이 콜린스에게 질문하기 위해 다가갔지만 어린이와 그 부모들이 콜린스를 에워싸고 있어 접근이 어려웠다.

찰스 카마다가 다녔던 퀸즈 아치비숍 몰리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패트릭 호건의 말은 미국인들이 콜린스와 그의 동료들을 어떻게 평가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호건은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영웅이 필요하다"며 "이들이야 말로 영웅이라는 역할 모델(role model)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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