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하고 돈이 없었던 권씨는 지난 2014년 11월 북한 국경을 넘었고 걸어서 태국까지 갔다. 새 삶을 꿈꾸며 한국행을 택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북한으로 되돌아가길 원한다고 NYT는 전했다. 권씨는 서울에서 NYT와 인터뷰를 갖고 “자신에게 적합한 말(馬)인지는 직접 타봐야 안다”면서 “한국은 나와 맞지 않는다. 나는 북으로 돌아가 전처와 16살 아들과 다시 함께 살고 싶다”고 토로했다.
권씨가 이같은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한국에서 당한 부당한 대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천민과 다름 없는 취급을 받았다면서 한국에서의 삶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권씨는 “다들 내 이름을 부르면서 바보처럼 대했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일했는데도 임금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의 약 63%가 한국에서 차별을 경험한다고 답했다. 권씨는 이후 비상식적인 처우에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피켓 시위도 벌였다.
보도에 따르면 1990년대 극심한 기근 이후 현재까지 약 3만명 이상의 탈북자가 한국으로 도망을 왔다. 그럼에도 지난 5년 동안 25명이 “의아하게도”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NYT는 전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이 북한에 의해 납치당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중국에 포섭돼 북한에 다시 끌려간 뒤 한국에서의 생활을 ‘살아있는 지옥’으로 선전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씨는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수개월 간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권씨는 공개적으로 북으로 보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는 “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시민”이라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에서 부유하진 않지만 남한에서처럼 오물 취급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씨의 사례는 북한에 선전 기회를 제공했다. 북한은 지난 6월 성명을 통해 “한국이라는 지옥에 살 수 없다고 말한 권철남의 눈물어린 호소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북한으로 되돌아오길 원하는 많은 주민들이 남한에 강제로 잡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도주의를 강조하는 한국 측의 발언은 위선이라고 덧붙였다.
권씨는 중국 국경 근처에서 허브 중개자로 일했고 당시 중국에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한 여성의 말에 혹해 탈북했다. 하지만 여성은 사라졌고 권씨는 불법 밀입국업자에게 2500달러를 주고 탈북 한 달여만인 2014년 11월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권씨가 기대했던 세상과는 달랐다. 고도로 조직화된 전체주의 체제에 익숙한 그가 한국의 급변하는 경쟁적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다른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된 일이었다.
권씨의 마음에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고 지난 해 5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열심히 벽돌을 실어 날랐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 경찰에 고용주를 신고했지만 되레 고용주 편을 드는 것을 보고 그는 북한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권씨는 인터넷에서 중국 관광 비자와 한국 여권이 있으면 북한에 갈 수 있다는 광고를 봤고 그는 가진 돈을 모두 달러로 환전했다. 그는 “더 이상 이 곳에서 상처입은 체 살아가고 싶지 않다”면서 해외로 이사가게 됐다는 소식을 친했던 경찰에게 전했다. 결국 그는 작년 6월 22일 월북 시도로 체포당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권씨는 “북한에 돌아가 한국에서의 삶이 어땠었는지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권씨는 같은 해 9월 석방됐지만 직장을 잃었고 동료 탈북자들도 그를 외면했다. NYT는 권씨에 대해 땅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의 재와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고 묘사했다. 권씨는 “나는 북한에선 알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에서 살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올해 3월 권씨는 서울로 이사했고 교회 도움을 받아 월세 267달러의 방을 구했다. 권씨를 도운 문대골 목사는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그런 권리를 부정하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