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의 월가 키워드)Wooden Nickel

  • 등록 2003-11-27 오후 2:13:37

    수정 2003-11-27 오후 2:13:37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맨하튼 남쪽, 월드파이낸셜센터 32층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허드슨 강이 대서양으로 흘러들며 북미 대륙에 마지막 작별을 고하면, 뉴저지 너머 서쪽으로 기우는 해는 눈물을 감추려 더욱 붉게 충혈된다. 아담 스위클은 벌써 만취한 다른 동료들과 달리, 조용히 창 밖을 주시하고 있다. 5분 후면 아틀란틱 시티로 출발이다. 지난 주는 웬지 `게임`이 매끄럽지 않았다. Z의 태도도 맘에 걸린다. Z는 로드 아일랜드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주말 낚시를 함께 하자는 제의를 끝내 뿌리쳤다. 도박 도시 아틀란틱 시티에서 팀 전체가 참여하는 진짜 게임에도 마지못해 참가하겠다고 했다. Z는 일년전에 팀에 합류했지만, 적응이 빠른 편이다. 스위클은 이번 기회에 Z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후 5시45분. Z가 온 모양이다. 문을 열어주기 위해 스위클이 리셉션 데스크 쪽으로 향했다. 그 때 FBI 요원 12명이 사무실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우직한 손들이 스위클의 양팔을 붙잡았고, 손목에 차가운 느낌이 엄습했다. 동료들도 하나 둘 FBI 요원들에게 끌려나왔다. Z의 모습은 끝내 볼 수 없었다. 뉴욕 외환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작전명 `우든 니클(Wooden Nickel)`은 이렇게 18개월만에 마무리됐다. ◇우든 니클 스위클은 지난 19일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된 47명의 외환 브로커, 트레이더, 변호사 중 한명이다. 스위클은 36세로 외환 브로커 회사인 UCG의 사장이다. 연방검찰은 이들을 18일 저녁 월드파이낸셜센터 사무실과 뉴저지의 저지시티 등에서 전격 연행했다. FBI와 연방검찰은 18개월 동안 이들을 추적해 증거를 확보한 후 사기, 돈세탁, 증권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FBI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특수 비밀 요원(편의상 Z)을 이들에게 접근시켜, 외환거래를 하도록 했다. Z는 이들과 거래하면서 외환 사기 행각의 증거들을 하나하나 수집했다. 이 비밀작전의 이름이 `우든 니클`이다. 우든 니클은 장난감 나무 동전을 뜻한다.(니클은 5센트짜리 동전) 지금은 일종의 기념품으로 수집가들에게 팔리고 있지만, 한 때는 실제 화폐로 통용되기도 했다. 1931년 워싱턴주의 테니노 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자,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나무 동전을 만들어 통용시켰다. 이후 우든 니클은 마을 축제나 맥주 회사의 판촉용 화폐, 기념품 등으로 활용됐다. "Don"t take any Wooden Nickels"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축제때 우든 니클이 통용됐는데, 축제가 끝나기 전에 얼른 물건으로 바꾸지 않으면 화폐 가치가 없어진다. 결국 축제 마감 며칠전부터는 상점들이 우든 니클을 받지 않았다. 웹스터 사전에 우든 니클은 "기념품으로 받거나 혹은 잘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이 구입한 전혀 쓸모없는 것"이라는 뜻 풀이가 나와있다.(something utterly worthless that is either accepted as a gift or purchased by a gullible person.) 그렇다면 FBI는 어떻게 외환시장 사기범 소탕작전을 기획하게 됐을까. 작전명은 왜 우든 니클이었을까. ◇비밀요원 연방검찰에 기소된 47명 중에는 UBS, JP모건, 소시에테제네랄, 드레스드너클라인워트밴스, 이즈라엘디스카운트 등 세계적인 금융기관의 직원들이 포함돼 있다. 인터딜러 브로커로 세계 최대 규모인 ICAP, 튤렛 리버티 등의 직원도 쇠고랑을 찼다. 연방검찰은 이들의 사기 기법이 2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것으로 일당들은 잠입한 비밀 요원에게 "사법당국도 우리를 절대로 잡지 못할 것"이라고 자랑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연방검찰의 기소장을 보면 내로라하는 금융기관과 함께 생소한 기관들의 이름도 등장한다. 매디슨딘앤어소시에이츠, 몽고메리스털링, 헤밀턴스털링 등이다. 여기서 스털링(sterling)이라는 회사명을 달고 있는 중소 브로커들이 사기 행각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스털링은 영국의 화폐 단위인 파운드의 다른 이름이다. 47명 중에는 1980년대 뉴욕 연방은행의 외환거래 위원회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인사와 현직 변호사 등도 포함돼 있다. FBI는 2002년 5월 다른 화이트 컬러 범죄자로부터 뉴욕 외환시장에서 뿌리 깊은 사기 행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FBI는 증거 확보를 위해 비밀 요원을 외환시장에 잠입시켜 일당들에게 접근토록했다. `우든 니클 작전`의 시작인 것이다. FBI의 비밀 요원은 매디슨딘 일당들에게 소개됐다. FBI는 매디슨딘이 입주해 있는 월드파이낸셜센터에 센추리온 컨설팅이라는 가공의 헤지펀드를 만들었고, 비밀 요원은 이 펀드의 매니저로 위장했다. 이 비밀 요원은 사기단의 젊은 딜러, 브로커들과 어울리며 환심을 샀고 이들이 `게임`이라고 부르는 비밀스러운 거래 기법을 배울 수 있게 됐다. FBI의 한 관계자는 "비밀 요원은 이런 부류의 화이트 컬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옷차림이나 생활습관 등을 익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일당 중 한명은 이 요원을 개인적으로 자신의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비밀 요원은 사기 행각을 벌인 브로커들의 내화 내용을 녹음하고, 이익금을 나누는 현장을 비디오로 녹화하는 등 증거들을 수집해 나갔다. 녹음, 녹화 테이프는 수백분 분량에 달했다. 이런 증거들은 상품선물위원회(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과 공유됐고, 사기단을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사기단은 6개월간 123건의 부정적인 외환, 외환선물 거래를 통해 UBS 등 5개 대형 금융기관으로부터 모두 65만달러의 이익금을 가로챘다. 연방검찰은 물증을 확보한 것이 123건이지만 실제 부정 거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FBI는 우든 니클 작전을 공개하면서 화이트 컬러 범죄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FBI는 금융시장 시스템의 안정을 위한 이번 잠입 수사를 위해 비밀 요원들에게 특수한 훈련을 시켰다고 강조했다. FBI는 함께 금융 사기를 공모 중인 사람 중에 비밀 요원이 포함돼 있을 수도 있으며 FBI의 제보자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FBI의 급습으로 일망타진된 사기범들은 18일 밤 브루클린의 차가운 유치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보석금을 내고 대부분 풀려났지만, 최고 20년형을 각오해야할 처지다. 일부 피고들은 코카인, 불법 무기 소지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의 기소를 맡은 뉴욕 연방검찰의 제임스 코미 검사는 법무부 부검찰총장으로 지명돼 워싱턴으로 떠나게 됐다. 법무부의 넘버2로 승진한 코미 검사는 마사 스튜어트의 주식 내부자 거래를 파헤친 스타 검사이기도 하다. ◇보일러 룸 앞서 `스털링`이라는 회사명을 가진 소형 브로커들을 월가에서는 보일러 룸(boiler room)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인터넷 등에 자극적인 광고로 순진한 개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시장이 오르건 내리건 외환시장에서는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1000달러 보장", "초과 수익률 90%", "외환시장의 매력은 베어마켓이 없다는 것", "2개월 수익률 30~40% 확정" 등의 광고에 현혹된 수천명의 투자자들은 외환거래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들에게 돈을 맡겼다가 큰 손실을 봤다. 코미 검사는 "겉으로 그럴듯한 회사 이름과 번지르르한 광고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였지만 모두 사기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바닷물에 뛰어들기 전에 바다에는 상어 떼가 우글거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사기단은 말도 안되는 파생상품과 외환 거래로 개인 고객들을 유인, 돈을 뜯어낸 뒤 거래에 참여한 브로커들끼리 돈을 나눠가졌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시장의 속성을 모르는 개인 투자자들은 진짜 은화(스털링)로 `우든 니클`을 잔뜩 산 것과 마찬가지다. FBI의 작전명 `우든 니클`은 이런 점에서 높은 수익률에 무조건 이끌리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셈이다. 사기단은 개인 투자자들뿐 아니라 세계적인 대형 금융기관들도 깜쪽같이 속여 넘겼다. 코미 검사는 "이들의 거래 기법은 외환시장에 만연된 것으로 비슷한 수법이 나온지 2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UBS나 JP모건 등에서 외환 딜러로 일하고 있는 사기단 일당은 다른 금융기관의 일당과 짜고 외환거래에서 고의로 손실을 입는다. 자신의 회사에 손실을 입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 중 환율 변동 범위내에서 눈에 띠지 않게 손실을 본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발각되지 않았다. 거래 기록상으로는 자연스러운 손실이지만, 사기단 일당끼리 사전에 매매 환율을 정해놓고 이익을 전가한 사기 거래인 것이다. 첫번째 거래에서 이익을 본 기관은 제3의 기관과의 거래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돈을 잃어준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 중소형 브로커 회사나 개인 고객이 끼어들어 대형 기관의 이익을 자신의 것으로 돌려놓는다. 모든 거래 과정에는 특정한 인터뱅크 브로커가 관여했고 최종적으로 이익을 얻는 기관이나 개인은 이익금을 딜러, 브로커 등과 골고루 나눠 가졌다. 이렇게 사취한 이익금은 변호사, 금융기관 등의 도움을 받아 철저한 돈세탁 과정을 거쳤다. 비밀 요원이 증거를 확보한 이같은 사기 거래는 6개월간 123건에 달했고, 편취한 이익금은 65만달러였다. 사기 거래에 참여한 일당들은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두툼한 돈봉투를 주고 받았다. 연방검찰은 이같은 사기 거래 대부분을 중개한 `아이트레이드커런시`라는 인터뱅크 브로커를 특히 주목했다. 사기단 일당들은 이 회사를 황금 단지(the pot of gold)라고 불렀다. FBI의 비밀 요원도 이 회사에 계좌를 터 놓고 사기 거래 과정을 직접 체험했다. 아이트레이드의 소유주인 스티븐 무어와 안소니 이아누치는 연방검찰에 기소됐을 뿐 아니라 CFTC에 의해서도 고발됐다. 스티븐 무어는 55세로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뉴욕 연방은행의 외환거래 위원회에서 자문역을 맡았었다. 연방은행은 그러나 무어가 은행의 직원이었던 적은 없었다고 공식 부인했다. 코미 검사는 "47명에 대한 기소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시장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해야할 것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뉴욕 외환시장이 그렇게 더러운 곳이란 말인가. ◇제어할 수 없는 공룡 뉴욕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 규모는 1조2000억달러에 달한다. 각종 파생상품까지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오가는 시장이다. 그러나 외환시장의 관리감독은 주식시장과 달리 특정 기관에 집중돼 있지 않다. CFTC가 선물거래와 관련, 감독권을 가지고 있지만, 부분적일 뿐이다. 이번 사기단 적발을 계기로 미 의회 일각에서는 외환시장 규제 장치를 만들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UBS나 JP모건과 같은 초대형 금융기관들마저 사기의 피해자였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 문제는 외환거래의 특성상 규제 방안을 만들기기 쉽지 않다는데 있다. 외환거래의 60%는 은행간에 직접 거래로 처리된다. 이른바 장외거래인 것. 대부분의 외환거래는 금융기관 간에 전화나 컴퓨터로 처리된다. SEC나 연방은행이 이들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환거래도 간접적으로 이들 정부기관의 감독을 받고 있는 셈이다. 미국 정부는 4년전 외환시장 규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특별 위원회를 꾸렸었다. 앨런 그린스펀 연준리 의장도 이 위원회에 참여했다. 위원회의 결론은 "규제를 통한 효율성 증가가 규제 비용보다 적다"며 "시장을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외환거래의 사이즈를 감안할 때 특정한 규제의 틀로 묶기 곤란하다는 것. 전세계적으로 10만명의 전문 트레이더들이 외한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10만명의 움직임을 감독기관이 일일이 체크하고, 감시할 수는 없다. 외환거래의 대부분이 은행간 거래이므로 은행감독의 범주에서 시장 감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규제 무용론자들은 "외환은 거시경제의 핵심 중 하나이고, 외환시장 자체가 이미 충분히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대형 은행들도 사기꾼들의 먹이감에 불과했다. 더구나 ICAP, 콜린스 스튜어트 튤렛과 같은 다국적 브로커들은 채권, 외환, 파생상품 등을 거의 아무런 규제없이 중개하고 있다. 1999년 외환시장 개선 특별위원회에서도 이들 브로커와 이른바 `보일러 룸`이라는 중소형 브로커들의 문제점이 지적됐었다. 시장에는 자유가 있어야한다. 감시자가 버티고 있으면 거래가 위축된다. 그러나 심판관이 없으면 도둑들이 날뛰게 된다. 뉴욕 외환시장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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