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10시 정부 서울청사.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미리 준비한 사퇴 발표문을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지난해 2월26일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로 취임한 후 임기 426일 만이자, 세월초 참사 발생 열 이틀째만이다.
그의 사퇴문에는 실종자·사망자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국가적 재난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통함이 묻어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사고 선 수습 후 사표 수리’ 방침을 밝히면서 정 총리는 당분간 퇴진을 전제로 ‘시한부 직책’을 이어가게 됐다.
◇ ‘구원등판’..그 후 1년2개월
정 총리는 취임 초부터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지연과 북핵 위기 등 안팎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정부를 지휘하고,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임무를 대과 없이 치러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활발한 외교활동을 통해 내치(內治) 중심이던 총리의 역할과 지평을 외교분야까지 확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로서 행정부를 대표해 두 차례의 대국민담화도 발표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던 지난해 10월 첫 담화에서 “국정원 댓글을 포함한 일련의 의혹에 대해 실체와 원인을 정확히 밝히겠다”고 했고, 철도파업이 장기화하던 지난해 12월 두 번째 담화에서는 ‘불법 파업’의 즉각 중단과 업무복귀를 촉구했다.
이런 행보는 헌법상 총리에게 주어진 권한을 충실히 발휘하면서 그동안 일각의 ‘의전·대독 총리’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냈다.
◇ 각료들 잇단 실언 파문엔 “… …”
그러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부 각료들의 잇따른 실언 파문에도 정 총리가 해임건의권 등을 적절히 행사하지 못하는 등 ‘책임 총리’로서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많다.
국정 전반에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점도 정 총리의 활동범위 축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해 해임건의를 한 지난 2월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오전만 해도 윤 전 장관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으나 오후에 갑자기 해임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를 두고 정 총리의 해임건의권 행사는 사실상 청와대와의 조율 끝에 나온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부적절한 언행’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도 정 총리가 과감히 해임건의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정 총리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25일 대정부 질문에서 정 총리는 일제의 침략을 ‘진출’로 기술한 교학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문제”라며 즉답을 회피, 야당 의원들로부터 “대한민국 총리가 맞느냐”라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