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3.0]⑥`포퓰리즘` 결국 정책 주도권 잃다

<창간기획·1부>역할모델, 대한민국이 해보자
이성적 논리보다 `목소리 큰 놈`이 통하는 구조
힘있는 특정단체 `자기들만의 이익추구` 멈춰야
  • 등록 2011-03-17 오후 12:30:00

    수정 2011-05-19 오후 1:53:42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다음 아고라 봤습니까?" 지난 2009년 기획재정부 세제실 소속 한 국장의 주요업무 중 하나는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 코너를 체크하는 일이었다.

종합부동산세를 인하하고 술, 담배에 대한 세금을 늘린다고 하니 야당에선 `부자감세·서민증세`라고 비판했고 비판여론은 인터넷을 타고 널리 퍼졌다. 인터넷상에서 사실이 아닌 내용도 사실처럼 받아들여지자 해명 댓글도 달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정부 프락치냐`며 인터넷 마녀사냥을 당하기 일쑤였다. 혹시라도 IP주소까지 추적해 댓글이 정부부처에서 나왔다는 것이 알려질 경우 정부가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할까봐 댓글 달기도 무서웠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 해 `부자감세·서민증세`라는 구호는 술, 담배 등 외부불경제에 대한 세금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철저히 중단시켰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났다. 더욱 더 민감해진 `세금`은 정부가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뺏겼다고 할 만큼 이해단체와 부정확한 정보에 현혹된 여론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 마녀사냥식 세금결정..`논의의 장`이 사라진다

지난달 초 때 아닌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논란`이 벌어졌다. 정부가 신용카드 공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는데도 한 시민단체는 서명운동까지 벌였고 대다수 언론은 `폐지는 절대 불가`라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냈다.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한국납세자연맹 홈페이지에 게재된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반대 서명운동` 관련 안내문
정부는 보통 비과세·감면제도 연장여부를 8월말 발표하는 세제개편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올해 말 일몰될 신용카드 공제는 폐지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여론이 거세지자 급해진 당·정·청은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서둘러 `연장`결정을 내렸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1999년 자영업자의 소득노출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돼 5차례 연장을 거듭하며 시행됐던 제도다. 2009년 정부는 제도의 목적이 달성된 만큼 `폐지`를 원했지만 정부의 모토가 `친서민`으로 흐르자 올해 말까지 연장키로 했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 직장인 40%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일각에선 `부자감세·서민증세`라는 반(反)정부 정서가 또 다시 나타났다. 그렇지만 한거풀 더 벗겨놓고 보면 `직장인 60%는 버는 돈이 적어 공제혜택을 받을 수조차 없다`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었다.    진정으로 서민들을 위한다면 신용카드 공제혜택을 줄이고 근로장려금(EITC)을 늘리는 방식이 더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질 틈은 없었다.

◇ 정책결정에 주도권 뺏긴 정부·국회..`휘둘리다`

이슬람채권과 연계된 거래에 세금을 감면하는 방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특정 종교에 과도한 혜택을 준다는 이유로 기독교 등 종교단체의 거센 반대여론에 휘둘리고 있다. 기독교는 `대통령 하야운동`을 거론할 정도로 거세게 항의했다. `표`를 생각한 국회는 개정안 폐기까지 불사하며 돌아선 상태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전경. 이슬람채권법 논쟁은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출처:네이버백과사전)
그러나 채권거래에 수반되는 행위에 세금을 감면해 타 채권과 동등한 혜택을 준다는 취지가 제도의 목적이다. 이자수수를 금지하는 이슬람율법에 따라 실질은 채권조달이라는 금융거래이지만 형식은 건물 등을 양도하는 실물거래 형태이기 때문에 이자소득세를 면제하는 대신 양도소득세 등을 면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슬람채권은 타 채권에 비해 저리에 장기로 자금을 저렴하게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좋은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슬람채권의 경제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단체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결과 이 방안은 지난해 정기국회에선 조세소위까지 통과했으나 2월 임시국회에선 `비공개 공청회`라는 형식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의 반이슬람 정서를 본 말레이시아는 국내 금융사의 채권발행(링깃본드)을 거부, 자금조달에 타격이 예상되고 있지만 분위기가 반전될 기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 원칙으로 돌아가라.."종교·이익단체 바뀌어야"

올해 초 벌어진 두 가지 사건은 마녀사냥식 정책결정이 우리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새삼 알게 한다. 더구나 이를 정책결정자인 정부나 국회가 쉽게 용인하면서 `목소리가 큰 놈`이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현상이 거듭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다. 세금의 가장 첫 번째 원칙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것과 국민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권리이자 의무라는 점이다. 그래서 공정성, 형평성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지만 마녀사냥식 정책결정은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책에 민의(民意)가 반영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민의가 국민 전체의 뜻인지 특정세력의 뜻인지에 대한 의문은 있다"며 "국민 전체의 뜻이라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 관련 전문가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을 설득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편으로는 힘 있는 종교단체, 전문자격사 등 이익단체들이 자기들만의 이익추구를 멈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종교단체는 현실에서 멀어지고 이익단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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