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인천에 사는 강모(45)씨는 요즘 한숨만 늘어가고 있다. 지난 2001년 분양받았던 부천시 A아파트의 입주기한이 이달 말로 끝나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분양 당시 중도금 무이자 융자 조건을 내걸었다. 강씨는 입주 전에만 팔면 이자부담 없이 시세차익을 챙길 것으로 기대하고 아파트를 샀다. 하지만 입주를 앞두고 지난 9월부터 매물을 내놓았지만 아직도 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10·29 부동산대책’ 이후 집값이 떨어지고 거래도 끊어졌기 때문이다. 강씨는 “당장 다음달부터 대출이자와 연체이자를 합쳐 매달 100만원쯤 물어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전세라도 나가야 잔금을 치를 텐데…”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에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새집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고, 전세로 돌려도 수요자가 나서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집을 비워놓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잔금을 못내 연체이자를 내는 사례가 속출하고, 그동안 강세를 보였던 입주예정 아파트의 매매가와 전셋값도 속락하고 있다. 특히 분양 당시 중도금 무이자 융자 조건을 내걸었거나, 단지규모가 1000가구 이상인 대단지에서 ‘불꺼진 아파트’가 급증하고 있다.
◆새 아파트 입주율 절반에도 못 미쳐=지난달 10일 입주가 시작된 평택시 현화지구 B아파트는 한 달이 넘도록 입주율이 50%를 밑돌고 있다. 분양 초기 100%에 육박하는 계약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지만, 막상 입주시점이 가까워지면서 입주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인근 ‘알엔디공인’ 정성래 사장은 “중도금 무이자 조건에 이끌려 투자목적으로 계약했던 사람들이 막상 입주를 앞두고 매물이 팔리지 않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면서 “급하게 전세로 돌려서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그마저 거래가 완전히 끊어져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말 입주에 들어간 서울 봉천동 C아파트와 장안동 D아파트도 아직까지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한 달 넘게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다. 봉천동 그린부동산 관계자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야 이사를 올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인기지역인 강남과 주상복합 아파트도 입주가 지연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입주 앞둔 분양권·전셋값 약세=거래중단으로 빈집이 증가하면서 입주 아파트의 매매가와 전셋값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양도세 부담이 늘어난 다주택자들이 분양권을 입주 전에 서둘러 처분하기 위해 급매물을 내놓으면서 가격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10월 말부터 입주한 서초구 방배동 방배자이 66평형은 10·29대책 발표 이후 매매가격이 5000만원쯤 떨어져 12억2000만원대까지 내려갔다. 일부 급매물은 11억원대까지 하락했다. 입주 한 달여를 맞은 동대문구 장안동 현대홈타운은 32평형이 주변 시세보다 3000만원이나 낮은 1억3000만원까지 하락했다. 수도권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연말 입주할 김포시 풍무동 프라임빌은 최근 한 달 새 분양권값이 평균 2000만∼3000만원 가량 떨어졌고, 매물도 전체 입주가구의 50%를 넘고 있다. ‘부동산114’ 김희선 전무는 “다주택자들이 기존 아파트보다 처분이 손쉬운 분양권을 던지는 추세”라며 “내년에도 중도금 무이자 조건 등으로 분양된 아파트가 대거 입주할 예정이어서 이 같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