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제출할 법 개정안의 초안 작성을 8월 중순 경까지 마칠 예정이었지만, 아직 초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 지난주 중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부기관장들을 불러 토의를 할 예정이었지만, 회동이 취소됐다. 그 이후 논의 자체가 중단된 상태다.
한나라당에서 한은법 개정 문제를 당론으로 추진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입법안조차 만들지 못한 상태다. 한은법 TF의 실무운영에 관여한 정부 관계자는 “법 개정안을 작성하고 있는 상황이란 점만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국회 입법안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한은법 TF 개정안`
급물살을 타던 한은법 TF의 움직임이 주춤한 이유는 이미 기획재정위에 또 다른 한은법 개정안을 상정해놓은 국회의 반발 때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소위는 지난 4월 국회에서 ▲한은 설립 목적조항에 금융안정을 명시하고 ▲한은에 금융기관 서면· 실지 조사권을 부여하는 등 금융안정 기능 부여에 따른 권한을 강화시키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의결한 바 있다.
기재위 소속 일부 국회의원들은 정부 입법안을 `비토`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기재위 소속 의원들은 한은법 TF에서의 논의가 국회에 상정된 개정안을 무시했다고 보고 있다.
한은법 TF의 개정안은 한은의 설립 목적에 `금융안정을 도모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것 외에는 의원입법안과 모두 다른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
금융권 및 금융당국에 따르면, 한은에게 은행들을 대상으로 한 단독 조사권을 주지 않도록 하고, 지급결제망 참여 금융회사를 관리하기 위한 각종 조사권한도 배제했다. 지급준비율 대상을 예금뿐만 아니라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등 예금유사상품까지 확대하자는 의원 입법안에 대해서도 `현행대로 한다`고 결론내렸다. 한은의 금융정보 수집은 현재 추진 중인 정보공유 MOU를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이같은 TF측의 논의 방향에 대해 금융위와 금감원은 대부분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됐다며 환영한 반면, 한은 측은 국회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국회 관계자는 “기재위에 제출되면 일단 소위에서 법률안 검토를 할 것인데, 소위에서 정부 입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며 “이런 방향이면 정부안이 국회에서 계류상태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 난처한 입장에 빠진 `재정부`.."고칠 수도 없고, 추진할 수도 없고"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기획재정부가 난처해졌다. 청와대가 작성한 정부안이 국회에서 거부되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게 됐다.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 한은법 TF가 설치됐을 때도 국회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컸다. 지난 4월 기재위는 재정부 측에 9월 정기국회 이전에 정부 입법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재정부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청와대에 미뤘다”는 정서 때문에 한은법 TF가 기재위에다 관련 논의를 하자고 요청한 것도 거부할 정도였다.
때문에 한나라당 김광림 의원을 중심으로 한은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처리하자고 하는 움직임을 한은법 TF의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기 위한 사전 조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 등 입법을 주도한 의원들이 "개별 의원들의 입법활동으로 진행되던 사안"이라며 "당론화할 사안이 아니다"고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난 25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한은법 개정 논의를 하기로 했으나, 논의 자체를 재검토하는 쪽으로 틀어졌다.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당내 여론을 살펴가면서 당정 협의회에서 논의할 사안인지를 검토해 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론화하자는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이다.
다만, 한나라당 내에서도 한은법 개정에 적극적인 기재위와 달라 금융당국을 관장하는 정무위원회에서는 한은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이어서, 지도부가 당론화를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힘들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상 정부 입법을 주도하고 있는 재정부로서는 TF에서 논의된 내용의 방향을 틀 수도 없고, 정부 입법안이 국회에서 거부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