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강종구기자] 심한 감기에 걸린 사람이 있다 하자. 감기약을 복용했는데 그 이후 감기가 더 심해졌다 하자. 그러면 감기약의 부작용일까.
콜금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금리를 내려봐야 기업들이 은행빚을 쓰지 않고 은행도 중소기업이나 가계 대출을 꺼려하는 마당에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주장이 적지 않다.
◇ 금리인하,신통치 않아 보이기는 한데..
한국은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과 11월 두 차례 콜금리를 내렸지만 통화량증가율은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다. 민간신용 공급이 너무나 저조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12월 M3증가율을 6%내외로 추산했다. 연말 정부가 남는 예산을 집중적으로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11월 5.9%나 거기서 거기다.
금융권의 6개월미만 단기수신, 이른바 단기 부동자금은 여전히 400조원에 달해 사상 최고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 돈이 실물경제로 흘러 들어가야 경제도 살고 자금 단기화 문제도 해결이 될텐데 말이다.
그나마 2003년에는 은행들이 중소기업과 가계대출로 먹고 살았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이마저 쉽지 않았다. 중소기업 대출은 2003년의 5분의 1수준인 7조원 가량에 그쳤고 그중 절반이 소호 등 개인사업자들이다. 대부분 투자가 아니라 당장 쓸 돈이 없어 운영자금으로 꾼 것이다.
성장률 측면에서 본 경기는 여전히 실망스럽다. 지난해 성장률은 한국은행이 당초 예상한 5.2%는 물론 나중에 수정전망한 5.0%마저 하회한 것으로 추정된다.
◇ 두가지 해법, 금리인상과 금리인하
그렇다면 콜금리인하 효과가 없는 것일까. 금리를 내려봐야 돈도 안돌고 경제도 살지 못하는데 뭐하러 내리나 하고 말 것인가. 이런 식의 회의론은 전문가들 사이에 일부 퍼져 있고 또 한국은행 내에서도 상당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히려 금리를 올리는 것이 정답이라고 한다.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금리를 올릴 것이냐 내릴 것이냐의 문제는 달리 표현하면 `끌어안고 갈 것이냐 아니면 버리고 갈 것이냐`의 문제다.
금리인하로 당장 덕을 보는 곳은 어디일까. 일단 대기업은 제쳐둬야 할 것 같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어느정도 규모와 재무적 안정성을 갖춘 기업들, 즉 상장기업과 코스닥 및 금융감독위원회 등록기업들 전체의 평균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현재 사상 처음으로 100% 아래로 떨어졌다. 금리를 내려봐야 더 이상 줄어들 이자비용도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계상황에 몰린 중소기업이나 가계의 경우에는 금리인하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다. 회사는 괜찮은데 당장의 돈이 없어 망할 회사가 살아날 수 있고 리파이낸싱을 통해 가계의 부채 부담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대기업들도 당연히 덕을 본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부채조정으로 이자비용은 계속 줄었고 주주 배당금은 계속 늘었다. 잘하면 지난해에는 자기자본비용이 타인자본비용보다 높아지는 첫해가 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은행빚을 내거나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이 주식발행을 하는 것보다 싸게 먹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계기업들을 끌어안고 갈 것이냐 말 것이냐는 것은 가치 판단의 문제이고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를 금리인하로 풀 것이냐 아니면 금리인상으로 풀 것이냐와 일맥 상통한다. 가치판단은 정책당국자의 몫이니 더 이상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인다. 다만 정부나 한국은행이나 금리인상이 아닌 인하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젖은 짚단에는 불을 붙여도 곧 불길이 솟아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해서 불을 붙이면 어느 순간 짚단이 마르고 불길이 올라오게 마련이다.
경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소비심리나 기업의 투자심리가 모두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지금 경제가 젖은 짚단이라는 뜻 아닐까. 그 물기를 말리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 경제회복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데..
이제 한국은행은 그리고 그 수장인 박승 총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훔쳐 보자. 중앙은행의 최우선 목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물가안정이다. 다른 어떤 것, 예를 들어 성장률 목표 달성 같은 것은 모두 그 다음이다. 따라서 어느나라 중앙은행이나 금리인하는 별로 달갑지 않은 정책일 것이다.
물가를 목표범위에서 관리하는 한은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중기적인 관점에서 인플레 위험이 더 클 것인가 아니면 디플레 위험이 더 클 것인가다. 인플레 위험이 높다면 인플레 기대심리를 잡기 위해 긴축을 실시할 것이고, 디플레 위험이 크다면 인플레 기대심리에 불쏘시개를 들이댈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물가상승률 수준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의 저가 공산품이 몰려 들면서 기업들의 가격경쟁력 회복이 아주 먼 일로 느껴진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올해말까지도 기업들이 가격경쟁력을 찾기란 매우 힘들 것이고 중국도 실업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공산품 가격이 빠르게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제 고물가시대는 역사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은은 여전히 인플레 위험이 더 높다고 보고 있는 모양이다. 박승 총재는 신년사에서 "물가는 대체로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공요금 인상 및 고유가 추세의 지속 가능성 등 불안요인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하반기 이후 경기회복과정에서 수요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하여야 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지금 현재 수요측 물가압력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안심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물론 신년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그 앞에 있는 다음 대목이다. "성장과 고용을 최대한 뒷받침하는 방향에서 정부 재정정책과 긴밀한 협조 보완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정부의 경제 올인 정책에 동참하겠다는 뜻인데 이 문장을 읽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금리인하`라는 네 글자를 떠올린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한국은행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예상하는 금리인하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현재의 경기우호적 금리수준을 가능한 오래 유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현재의 기조를 끌고 가면서 경제의 특별히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다른 치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물가당국인 한국은행이 연초 금리를 내리기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다. 성장도 신경써야 하지만 연초는 항상 물가가 들먹거리는 시점이고 정부는 올해 예산의 60%를 상반기 그것도 1분기에 집중적으로 쏟아붓겠다고 한다. 물가에 부담이 될 것이 뻔하다.
더구나 정부는 지난해 8조원이던 한국은행 일시차입금을 18조원으로 대폭 늘렸다. 상반기에는 재정자금이 쏟아지고 하반기에는 경기회복이 예상되는 시점이니 한국은행은 참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 당장의 성장률은 한은 관심이 아닌 듯
박승 총재 신년사를 읽다 특별히 눈길이 꽂힌 곳이 있다. "지난 한해 우리 경제는 5% 가까운 성장률을 나타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양극화라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었습니다" 라는 대목이다. 별 것도 아닌 것 같지만 5%가 되지 않는 성장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우리 성장잠재력으로 볼 때 괜찮다는 것 아닌가. 참고로 한국은행은 올해 1~2분기에는 전기비 0.8%, 3~4분기에는 전기비 1.0%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기억은 과거를 찾아갔다. 지난해 12월 한국은행의 한 국장이 한 말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경기회복을 위해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소비와 투자는 저조하고 경제도 4%대 성장에 그쳤다. 이제 우리의 잠재성장률을 재고해 봐야 할 때다"
이미 수도 없이 들어 귀가 따갑지만 언제나 가슴을 울리는 박 총재의 설교가 이어진다. "이제 종래의 낡은 성장엔진으로는 더 이상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중략)..양극화와 고용없는 성장은 결국 경쟁력 없는 산업이 도태되고 새로운 성장산업이 출현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걱정은 양극화, 그중에서도 중소기업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출 대기업이 사상 최대의 수익을 기록한데 반해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경영난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시각은 지난해 12월 한은에서 열린 마지막 경제동향간담회에도 잘 나타나 있다. 다분히 한은의 입장이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날 간담회 발표문에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정책카드를 남겨둬야 한다`는 내용과 ▲`성장의 수준이 아니라 내용이 문제`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종합해 보면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말인데 이들을 죽이지 않고 체질개선을 통해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박 총재와 한국은행의 속마음인 것 같다. 하긴 중소기업이 살지 않으면 고용도 없고 중소기업에 돈을 잔뜩 빌려준 은행마저 위험해질 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6일 발표한 올해 연간 통화정책 방향에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정책자금인 총액한도대출 얘기를 하고 있다. 지원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체계를 개선 및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론이나 미래 매출채권을 담보로도 대출이 가능하도록 바꾼다고 한다. 참고로 지난해 한국은행은 총액한도대출을 증액하는 방안을 최종검토까지 마쳤으나 금통위가 11월 콜금리를 인하하면서 물건너간 바 있다.
또 지준제도 변경도 계획하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시중자금의 단기화를 풀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아닌가 싶다. 현재 예금종별로 적용되는 차등지준제를 결제성기준 차등 지준제로 바꾸어 자연스럽게 자금의 장기화를 유도하겠다는 복안이다. 예를 들어 3개월 만기의 정기예금에는 지준율을 높게, 5년만기 정기예금에는 지준율을 낮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콜금리를 현 수준에서 더 내릴 여력은 있어 보인다. 적정한 콜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근원물가와 큰 차이가 없다면 올해 근원물가 연간 예상치인 3.0%로 내려도 실질금리 마이너스 문제는 크지 않아 보인다. 또 한국은행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판단하는 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결정은 금통위가 내린다.
당장 1월 콜금리 결정 D데이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해말 "두번에 걸친 금리인하 효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고 했던 한국은행 금통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사뭇 궁금하다. (인상가능성은 0%에 가까우니 논외로 하고) 인하를 할 지 동결을 할 지도 물론 관심이지만 그 보다도 당장의 경제사정에 떠밀리고 정부나 여론에 떠밀려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한 결정이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