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주로 생계형 자금으로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가 원리금을 갚지 못해 다시 돈을 빌리는 등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다중채무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신용자 4명 중 1명 저신용 ‘전락’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금융위기 이후 저신용 가계차주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 6월말 고신용(1~4등급) 또는 중신용(5~6등급) 등급이었던 대출자 중 14.8%가 5년만인 지난해 6월말 저신용(7~10등급) 등급으로 떨어졌다. 중신용자에서 저신용자로 하락한 비율은 평균 25.2%였고, 고신용에서 저신용으로 하락한 비율도 평균 7.2%에 달했다.
저신용자가 되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 신규·재발급이 어려워지는 등 정상적인 신용활동이 제약된다. 서민금융지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부채가 많은 경우 이마저도 힘들어 사실상 사금융이나 다중채무로 내몰리게 되는 셈이다.
이장연 한은 금융시스템연구팀 과장은 “중신용에서 저신용으로 하락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중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 시장이 없기 때문”이라며 “중신용자들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양적인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신용등급 하락은 소득 수준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 소득이 2000만원 미만인 경우 21.4%가 저신용으로 하락했으며, 2000만원 이상~4000만원 미만의 경우 13.2%에 달했다. 반면, 4000만원 이상~6000만원 미만과 6000만원 이상의 소득자는 각각 8.2%, 7.5%에 그쳤다.
주로 생계형 자금 목적으로 돈을 빌렸다가 빚을 갚을 여력이 없어 자꾸만 빚을 지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저신용 등급으로 떨어진 대출자의 평균 총부채상환비율(DTI)은 2008년 14.2%에서 지난해 말 84.8%로 6배 가량 악화됐다. 같은 기간 금융위기 이전부터 저신용 상태에 있던 대출자도 44.9%에서 71.4%로 급등했다.
고용형태별로는 무직 및 자영업 대출자중에서 저신용 하락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들의 저신용 하락비율은 각각 17.2%, 11.6%로 임금근로자(9.9%)를 크게 웃돌았다.
소액 고금리대출·다중채무자 전락 ‘악순환’
문제는 저신용자들이 제도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고금리대출이나 사금융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다중채무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은행 대출자의 저신용 하락률은 2009년 6월말 8.9%에서 지난해 6월말 4.1%로 떨어진 반면, 비은행 대출자는 15.6%에서 19.5%로 상승했다. 특히 비은행권내 저신용 다중채무자가 2009년 6월말 21.8%에서 지난해 6월 40.5%로 급등했다. 은행과 비은행에서 모두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저신용 하락률도 15.8%에서 21.8%로 확대됐다.
아울러 소액 고금리대출자들의 저신용하락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생계자금 대출이 많았다는 얘기다. 1000만원 미만 및 1000만원 이상~2000만원 미만의 소액대출 이용자의 저신용 하락비율이 각각 19.0%, 19.2%로 집계된 반면, 6000만원 이상~8000만원 미만 및 8000만원 이상~1억원 미만의 거액대출은 각각 8.7%로 소액대출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장은 “저신용 가계차주 문제가 심화되면서 금융기관의 건전성 저하는 물론 정부의 재정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며 “취약계층의 신용저하 현상을 완화시키는 한편, 신용회복을 도울 수 있는 정책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