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마크 피터슨 '위안부, 다시 한국을 자극하는 일본'

마크 피터슨 브리검영대 명예교수
다국어 포털 '코리아넷' 기고 칼럼
  • 등록 2021-02-18 오전 9:57:25

    수정 2021-02-18 오전 9:57:42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일본은 왜 아직도 배우지 못했을까? 아니면 뭔가 숨은 의도를 갖고 일부러 한국인들을 도발하는 것일까? 무슨 이유이든 2차 세계대전 당시 행위를 두둔하는 일본의 추한 모습이 2021년에도 다시 한 번 고개를 들고 있다.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브리검영 대학교 명예교수
최근 논문을 흉기로 삼아 한국인의 눈을 찌른 장본인은 하버드 법대 교수다. 공식 직함이 ‘미쓰비시 일본 법학교수(Mitsubishi Professor of Japanese Legal Studies)’인 램지어 교수는 일본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2년 전 일본 정부 훈장인 욱일장을 받았다. 그는 일본 사람은 아니지만 그간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대내외적으로 일본을 홍보해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계 최고의 대학 하버드 법대에서 나온 논문으로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며 또 다시 한국인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댔다.

얼마 전 내 동료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 MBA를 마친 한 젊은 친구는 램지어 교수의 ‘하버드 논문’에 대한 의견을 알려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그는 ‘하버드 박사 출신이라면 당연히 이 논문에 대해 의견을 밝혀야 한다’며 자기는 너무 화가 나서 전날 밤 한숨도 못 잤고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적잖은 사람들로부터도 이 논문에 대해 의견을 밝혀달라는 요청을 여러 번 받았다. 그만큼 이 문제는 감정이 격해지는 사안이다. 일본은 언제나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입장을 고집해왔으며 매번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딱지를 떼어내 버린다.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이야기하자면 나는 1980년대 후반 부산에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집에는 강한 경남 사투리를 쓰는 60대 후반의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나는 그녀에게서 제2차 세계대전 무렵 그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경남 서부에서 태어난 그녀는 십대 초반에 부모님에 의해 중국 하얼빈에 있는 삼촌 집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당시 하얼빈은 일제 하에 있었고 삼촌은 일본군 장교였다. 부모는 왜 어린 딸을 머나먼 타지로 보내는 결정을 하게 됐을까? 자기 딸이 길거리에서 납치당하거나 천황을 위해 봉사하는 ‘위안부(comfort women corps)’로 징집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강제로 잡혀갔거나 속아서, 혹은 궁지에 몰려서 위안부로 징집된 여자들의 이야기는 당시 한국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있었던 한국의 한 고등학교 교사의 사연도 가슴 아프다. 그 교사는 ‘군 위안부’에 대해 USO(미국위문협회, United Service Organization)처럼 다과를 접대하는 곳 정도이며 여자들도 전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지원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이 들은 대로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자기 학교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여학생 다섯 명을 선발해 군위안부로 보냈다. 그는 나중에 위안부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 뒤에서야 자신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이번 램지어 교수 논문의 문제점은 피해자들이 어떻게 강제로, 또는 속아서 위안부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며 변호사들만 읽을 수 있는 알기 힘든 법적인 주제로만 국한시켰다는 점이다. 램지어 교수는 매춘제도의 법적인 구조(legal structure)에만 초점을 맞춰 일제의 해외 전쟁터에 설치된 ‘위안소’에 채용된(recruited) 매춘부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강제로 끌려왔거나 납치되어 혹은 속아서 잡혀온 여자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서 ‘동원됐는지(dragooned)’에 대해 균형 있게 다루지 않은 채 ‘동원됐다’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나는 저자가 이 문제에 대해 ‘다 좋았고 잘 됐다’고 말하려고, 혹은 그런 암시를 주기 위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법률 용어를 엄격하게 사용한 점과 하버드 법대의 담론 부재가 드러나는 그의 논문에는 그 ‘계약’을 맺은 여자들에 대한 감정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

문제는 전쟁 당시 일본이 합법적으로 운영한 유곽(legal brothels)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는 점이다. 양국 정부와 양국 국민들이 이 사안에 대해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일제 강점기에 겪은 핍박의 상처를 다시 한 번 후벼 판 것으로 여긴다.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마땅히 보여야할 사죄와 동정과는 ‘멀찍이(far-country mile away)’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점에서 독일과 다르다. 독일은 자국의 전쟁 범죄에 대해 결코 두둔하지 않는다. 나치, 히틀러, 그리고 이들을 수동적으로 지지했던 대중들은 독일에게 있어 비난의 대상이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 애틀랜타 일본 총영사, 오사카 시장 등 일본 관료들은 끊임없이 “그들은 창녀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국가가 허가한 유곽에서 이뤄진 합법적인 매춘에 관한 법적인 문제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오로지 법적 잣대만을 들이대는 그의 논문은 마치 소독약처럼 냉정하며 무관심하다. 저자와 학술지 모두 정치적 세심함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미국 TV드라마에서 “사실만 말하세요”라고 말하던 경찰관 조 프라이데이(Joe Friday)같다. 이성적이고, 학술적이라는 논문의 형식은 외려 일본인들의 불감증을 감성적으로 강화시키고, 한국인들에게는 ‘거짓말쟁이 사기꾼 일본인’뿐만 아니라 하버드가 지금 자신들과 반대편에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감정을 배제한 채 ‘계약상 합의 내용’이었다는 논리로 일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합법적이고 냉정하며 공식적이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이제 넘어가자는 식이다. 그러나 그는 법적인 문제 외에 위안부들에 관해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논문은 ‘난징대학살(난징 강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난징대학살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최악의 전투 중 하나로, 일제의 침략에 거세게 저항하다 도시 전체가 강간과 파괴로 얼룩지게 된 사건이다. 일본군은 전투를 치른 뒤 여자들을 강간하고 사람들을 죽이며 난동을 부렸다. 이로 인해 일본 정부는 자국 병사들의 성욕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 위안소 운영을 강화하게 됐다. 일본의 위안소 운영 확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난징대학살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다른 범죄를 대신하기 위해 자행한 또 다른 전쟁 범죄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서 위안부 여자들과 위안소 사이의 관계는 ‘사무적인’ 법적 합의사항(‘matter-of-fact’ legal arrangement)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의 논문은 여자들이 맡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줬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잠시 쉬었다는 이유로, 손님을 언짢게 했다는 이유로, 병을 옮기거나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여자들을 난폭하게 때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포주 역할을 했던 유곽의 주인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위안소 제도의 이 같은 잔인한 면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어렵다, 위험하다(difficult, dangerous)’ 정도로 적힌 것이 전부다. 저자는 엄격한 법률 용어를 사용하면서 정작 위안소의 적나라한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매춘부와 일본 정부 간 계약에 대해 말하고 있는 단조로운 법학 논문이다. 그는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필리핀 여자들에 대해서도, 중국 및 동남아 여자들에 대해서도, 네덜란드 여자들에 대해서도 논하지 않았다. 심지어 위안부로 끌려간 네덜란드 여자들 중 몇 명은 오늘날 인도네시아로 알려진 옛 네덜란드 동인도 지역에서 아이들을 키우던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일본이 전시에 저지른 여성 착취 범죄 상황 전반에 대해서는 논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처럼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논문은 굉장한 폐해를 낳고 있다. 물론 법학자는 전쟁 시의 법적인 문제에 대해 다룰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거 어느 때 혹은 시간과는 무관하게 오늘날 이슈의 전례가 되는 법률 문제에 대해 글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논문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삶과 이미 작고한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고 서로 골이 깊어진 두 이웃 국가 간의 불신과 증오에 불을 지피는 것이라면, 또 그로 인해 양국 간 악의적인 감정이 재발하는 것이라면 이 논문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저자는 솔직히 이 문제가 아직 다뤄지지 않은 법학 역사의 흥미로운 일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논문이 끼칠 대혼란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 논문이 양국을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고통스러운 기억의 불씨에 불을 지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을 수도 있다. 램지어 교수는 이런 고통이나 악의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다. 그의 논문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오랜 반감, 불신, 증오에 불을 질렀다.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 ‘하버드 논문‘은 모든 한국의 모든 매체를 뒤흔들었고, 마치 살을 뚫고 나가는 총알처럼 해묵은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았다. 과연 언제쯤 일본과 일본을 대표하는 모든 이들이 20세기 초 자국이 저지른 전범 행위에 대해 정당화를 그만두고 그저 “미안하다”고 말할까?

●칼럼을 쓴 마크 피터슨 미국 브리검영 대학 명예교수는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학 박사 출신으로 브리검영 대학에서 30년 이상 한국 역사를 강의했으며 2018년 은퇴했다. 현재 ’우물 밖 개구리(The Frog Outside the Well)‘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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