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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하 우크라 사태)이 한 달 이상 이어지면서 이들 국가와 거래를 해 온 국내 수출입 기업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서방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에 자금조달과 함께 수출입 거래에 ‘직격탄’을 맞은 국내 기업과 현지 진출기업은 러시아행(行) 항공·해운길 봉쇄로 인한 물류난까지 맞닥뜨리며 막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할 처지다.
여기에 천정부지로 치솟는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으로 생산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글로벌 공급망 차질까지 가속화 하고 있어 수출기업에서 산업계 전체로 ‘도미노식 피해 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우크라 사태 장기화에 부채만 쌓이나
27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협회가 가동 중인 ‘우크라이나 사태 긴급대책반’에 접수된 우리 기업 피해 사례는 우크라 사태 장기화와 함께 계속 늘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3일까지 한 달여 간 접수된 애로사항만 총 558건(436개사)에 달한다. 이 중 가장 많은 피해 호소 유형은 ‘대금결제 차질’로 절반 이상인 300건(53.7%)을 차지했다. 이어 ‘물류·공급망 문제’ 188건(33.7%), ‘현지 정보 부족’ 47건(8.4%) 등이었다.
실제로 러시아에 연간 10만달러 정도 자동차부품을 수출하는 B사는 총 7만 5000달러 계약 중 대금결제·물류 난항으로 인해 2만 5000달러 계약이 취소됐다. 나머지 5만달러 계약도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현지에서 전자부품을 판매하는 C사는 판매대금 40만달러가 은행에 묶여 있어 자금 회전에 압박을 받고 있다. C사 관계자는 “주거래은행으로부터 러시아에서 입금되는 송금 지급불가(동결) 처리를 통보받아 판매대금을 찾지 못했다”며 “부채만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러시아를 향한 국제사회 하늘길과 바닷길 봉쇄에 수출입 기업 물류난도 심각하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생화를 수입해 국내에 유통하는 D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영공이 폐쇄되면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동유럽 등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항공길이 막히면서 D사 수입경로인 케냐-중동노선이 과부하에 걸린 것이다. D사 관계자는 “수입품 적재 공간 확보에 어려움이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정책자금 융자·수출처 다변화 지원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우크라 사태는 수출입 중소기업의 대금결제 중단, 수출 물량 감소 등 직접적인 영향 외에도 급등하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불을 지폈다”며 “원자재 가격 변동 대응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으로서는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로 국내 수출 전망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7일 발표한 ‘2022년 2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조사’에 따르면 올 2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는 96.1로 8분기 만에 100 밑으로 떨어졌다. 지수가 100을 밑돌면 앞으로의 수출 여건이 지금보다 악화할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품목별로는 무선통신기기(70.9), 석유제품(75.2), 철강·비철금속 제품(81.1), 반도체(88.1) 등 8개 품목의 수출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유동성 위기로 인한 수출입 중소기업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 정책자금 융자지원을 대폭 늘리고, 대체 수출처 발굴에도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는 국내 전체 수출에서 중소기업 비중이 50%가 넘을 정도로 중소기업이 일궈낸 시장”이라며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운전자금 등을 포함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