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증권)⑨살아남은 일본 증권사들

  • 등록 2004-09-21 오후 1:00:41

    수정 2004-09-21 오후 1:00:41

[edaily 김호준기자] 1997년 일본 대형4사의 한축을 차지했던 야마이치증권의 파산은 일본 증권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야마이치증권은 거품 붕괴 이후 주식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자기매매를 통해 수익을 보존하려다가 파산선고를 받게 된다. 야마이치증권의 파산으로 대형 증권사마저도 단독으로는 생존이 곤란하다는 위기감을 갖게 됐다. 현재 대형 증권사 가운데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노무라증권이 유일하다. 다이와증권은 스스로 스미토모은행 계열로 들어갔고, 니코는 도매영업 부분을 살로먼스미스바니(현 시티그룹)에 매각했다. 파산한 야먀이치증권은 메릴린치에 넘어갔다. 한때 세계 최대 증권사로 꼽히던 노무라증권 역시 지속적인 주가 하락과 수수료 수입 격감으로 위기를 맞게 됐다. 10%를 웃돌던 위탁매매 시장점유율이 미국 증권사 공세에 밀려 5%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노무라증권은 종합증권사들 대부분이 대형은행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독자적으로 살아 남았다. 노무라증권은 2000년부터 3년 연속 500억엔 이상 흑자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소매부분 이외 글로벌 도매영업, 기업금융 등에서도 일본 내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소장은 "노무라증권의 독자 생존은 97년 이후 지속된 변화전략이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라며 "대주주와 최고경영자의 확고한 변화 의지가 노무라증권의 성공이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했다. ◇ 노무라증권의 자기 변신.."문 닫을 각호해야" 97년 일본 증권산업이 위기를 겪을 당시 우지이에 노무라증권 사장은 자산관리형 비즈니스 강화를 주창했다. 그의 발언에는 비장함마저 녹아 있다. "자산관려형 비즈니스는 연간 수입이 예탁자산 잔액의 2~3% 정도 밖에 안된다. 따라서 예탁자산을 5~6배 이상 늘려놓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수입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증권매매업(브로커리지)을 주업무로 계속해 나가더라도 어차피 수입은 줄 수 밖에 없다. (중략) 다행히 우리는 그동안 사내에 유보해놓은 재산이 있다. 2~3년 적자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자산관리형 비즈니스를 계속해 4~5년이 지났는데도 적자상태가 계속된다며 우리 회사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우리가 하고 있는 비즈니스가 사회적으로 존재의의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증권업 비즈니스中, 강창희 저) 일본은 97년 이후 지속된 구조조정 과정에서 105개 증권사가 사라졌고, 100개 증권사가 새로 생겨났다. 기존 증권사들도 경영환경에 대응해 영업방법을 바꿔나갔다. 일본 증권사들의 비즈니스 모델 개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형 증권사들의 변화 방향은 국내 증권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산관리형 영업과 투자은행업무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산관리형 영업이란 개별종목 또는 상품을 추천하는 것에서 탈피해 보유자산과 연간수입 등 고객의 특성에 맞는 자산운용을 제안하는 영업방식을 말한다. 강 소장은 "자산관리 영업 도입을 위해 일본 증권사들은 지점에 시세판을 없애고 컨설턴트용 부스를 설치하는 한편 영업사원의 보수를 예탁자산에 연동한 체계로 전환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중소형 증권사 가운데 주식 딜링업무를 강화하는 증권사와 데이트레이더를 겨냥한 수수료 할인 증권사가 등장했다. 이치요시증권처럼 미공개주식 취급 및 신규공개 업무로 전략을 바꾼 곳도 있다. ◇ 마쓰이증권, 중소 오프라인사에서 최대 온라인사로 중소형 증권사 가운데 마쓰이증권이 10년 동안 일구어낸 변화는 단연 돋보인다. 미쓰이증권은 중소형 증권사에서 일본 최대 온라인증권사로 발돋음했다. 이 과정에서 마쓰이 미치호 사장의 과감한 개혁 경영노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 금융청 집계에 따르면 마쓰이, 이트레이드, DLJ다이렉트 등 6개 온라인증권사가 전체 개인 주식매매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95년 미치호 사장이 마쓰이 증권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에는 온라인 거래는 유명무실했다. 그는 사장에 취임한 이후 지점을 폐쇄하고 통신영업으로 대전환을 시도했다. 아울러 위탁매매 수수료와 계좌관리 수수료 등을 내리는 이른바 가격파괴 전략을 구사했다. 중소형 증권사가 수수료 자율화 이후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율의 수수료를 받고도 견딜 수 있는 비용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회사 내에 엄청난 동요가 일어났다. 베테랑 영업사원이 다수 회사를 떠났고, 일부 사원은 전임 오너 사장에게 진정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외부에서는 마쓰이증권이 앞으로 영업활동을 하지 않기로 했으며, 망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 최고경영자 주도..10년 동안 자기변신 하지만 그는 오너의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경영전략을 밀고 나갔다. 마쓰이 미치호 사장의 경영전략이 진가를 발휘한 것은 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인터넷 매매시대가 시작되면서 마쓰이 증권은 최대 인터넷 증권사로 발돋음했다. 5년전부터 오프라인 영업을 포기하고 온라인 컨셉을 도입한 것이 딱 들어 맞았던 셈이다. 마쓰이증권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증권사로 변신해 구조조정의 터널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이 밖에도 일본에는 증권산업 `빅뱅`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전문 증권사들이 탄생했다. 회사 안에는 점포나 영업사원을 두지 않고 독립적인 FP나 세무사, 회계사 등 개인과 커미션 계약을 맺고 영업을 외부에 위탁하는 증권사도 생겨났다. 아멕스 어드바이저, 어드바이저 텍, LPL일본증권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투신상품 판매에 있어 고정비를 쓰지 않고 판매채널을 다양화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소수의 보유자산가나 기관투자자들에게 타켓을 좁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자들도 출현했다. 신흥기업 발굴 및 육성을 기치로 내걸고 미공개 주식의 매매중개, 신규공개 지원, 인수 등의 업무에 특화하는 증권사도 등장했다. 이 밖에도 자기매매만 전문적으로 하는 증권사 혹은 해외펀드 도매판매나 프라이빗 에퀴티펀드 조성 및 판매를 주된 업무로 하는 증권사들도 생겨났다. 이들은 종업원 100명 안팎으로 틈새시장을 겨냥한 소규모 증권사가 대부분이다. ◇ 기로에 선 국내 증권사, "최고경영자가 제역할해야" 국내 증권사들도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장기적인 생존법을 모색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강창희 소장은 "일본 증권사의 자기 변신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증권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고 있는 대주주와 경영자, 그리고 이를 따르는 종업원들의 노력이 어울어질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국내 증권사 구조개혁이 미뤄진 것은 최고경영자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 소장은 "지금까지 증권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증권사 CEO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고, 임기도 짧아 증권사 개혁이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임기가 짧은 비전문 경영인이 굳이 골치아픈 문제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강 소장은 "이제부터라도 대주주과 경영자가 장기적인 비젼을 갖고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만 한림대학교 금융학부 교수도 "이제 국내 증권사들도 전문 증권사로 변신하느냐 아니면 종합증권사로 살아 남느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다만 종합증권사로 살아 남을 수 있는 곳은 4~5개 리딩 증권사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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