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맛보기] ‘문재인 대세론은 필패’ 기우인가 vs 필연인가

더민주 8.27 전대, ‘이래도 저래도 문재인’ 분위기‘
이회창, 97년 2002년 대선 대세론 안주로 실패
'대세론 악몽’ 문재인, 제2의 이회창 되나?
더민주 대선후보 경선 역동성 제고는 양날의 칼
  • 등록 2016-08-07 오후 10:26:16

    수정 2016-08-07 오후 10:26:16

(사진=문재인 페이스북)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하나의 유령이 지금 더불어민주당을 배회하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이라는 유령이”

여야 모두 전당대회가 한창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 체제 정비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재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여름휴가철에 올림픽 시즌이라지만 해도 너무합니다. 새누리당은 친박 vs 비박의 혈투라도 있지만 더민주는 예정된 결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당 대표보다 컷오프 대상자에 더 관심이라는 비아냥마저 나왔습니다. 송영길 의원의 컷오프는 이변이지만 더민주 전대는 누가 뭐래도 ‘이래문(이래도 저래도 문재인)’ 구조입니다. 친문계의 당권장악은 예고된 수순입니다. 이른바 문심(文心)이 차기 당 대표 결정의 핵심 열쇠라는 뜻입니다.

더민주의 상황은 쉽게 말하면 ‘문재인 대세론’입니다. 문재인은 더민주 최대 주주이자 오너입니다. 당내 경쟁자도 없어 보입니다.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는다면 내년 대선국면에서 더민주의 대선후보는 문재인이 될 가능성이 99.99%입니다. 대세론은 달콤합니다. 대선후보직을 위협하는 잠재적 후보군이 없는 만큼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선본선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당내 경선에서 실질적인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예방주사 효과도 사라지고 자칫 오만함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의 실패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대권 문턱에서 두 번이나 미끄럼’ 이회창 대세론의 실패

대세론 하면 떠오르는 정치인은 이회창입니다. 이회창은 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 국면에서 대세론을 누리면서 대권 쟁취를 눈앞에 뒀지만 막판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특히 2002년 대선국면에서 이회창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들의 병역비리 논란 역시 97년 대선에서 한 번 걸러진 사안이었기 때문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회창은 단순한 야당 총재 그 이상이었습니다. 사실상 차기 대통령이 예약된 상황 속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대세론에 안주하다가 결국 노무현에게 정권을 내줬습니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전반적인 상황을 오판한 결과입니다.

어찌보면 이회창 대세론의 실패는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입니다. 모든 선거의 필승 공식은 외연확장입니다. 이회창은 ‘나 혼자만으로도 된다’고 자신만만했습니다. 97년 대선국면에서는 이념적으로 이질적인 DJP 연대를 막지 못했습니다. 2000년 16대 총선 이후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면서 또 한 번 대선후보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지켜만 봤습니다. JP나 정몽준 모두 이념적으로 DJ나 노무현보다는 이회창과 더 가까운 편입니다. 만약 이회창이 97년 대선국면에서 JP의 손을 잡거나 이인제의 독자출마를 보다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그리고 2002년 대선국면에서 정몽준에게 보다 확실한 러브콜을 보냈다면 이회창의 실패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재인으로 어렵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文 대세론’ 우려

더민주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나쁘지 않습니다. 야권분열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20대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123석을 얻으며 122석에 그친 새누리당을 누르고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차기 대선 전망도 괜찮은 편입니다. 문재인은 올초부터 여야 차기주자 대선 지지율에서 1위 자리를 거의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지지율로만 본다면 안철수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등장으로 여권 차기주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갔지만 문재인만큼은 별다른 여파없이 자웅을 다투고 있을 정도입니다. 더구나 4.13 총선 이전 김종인 비대위원장 영입 이후 문재인이 정치 전면에서 물러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그만큼 강고한 지지층의 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느 분의 지지도가 높다고 해서 그것이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상항이다. 아직 대선까지는 거의 1년 반이 남았다.”(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독주 모양은 안 좋다. 여러 사람이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세론에 안주하면 2002년 이회창 후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변신의 노력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김영춘 더민주 의원)

그런데 이상합니다. 당 안팎의 불안감이 상당합니다. 2012년 대선의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난하게 대선후보가 되면 무난하게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세론이 주는 폐해는 상당합니다. 8.27 더민주 전대가 이래문 구도로 흐르면서 내년 대선후보 경선 역시 해보나 마나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입니다. 문제인 대세론이 고착화되면 대선 경선과정에서의 역동성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른바 노무현 바람,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vs 박근혜의 혈투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대선 경선의 역동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미국 대선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은 어찌보면 버락 오마바와 힐러리 클린턴과의 치열한 경선이 밑바탕이었습니다. 더민주 안팎에서는 ‘오바마 vs 클린턴’ 또는 ‘클린턴 vs 샌더스’ 등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역동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집토끼 다독이고 산토끼 포용해야’ 문재인의 딜레마

문재인은 과연 당 안팎의 우려대로 이회창의 실패를 되풀이할까요? 더민주는 올초 국민의당 창당으로 분당사태를 겪었습니다. 문재인을 비판해온 세력들은 대거 이삿짐을 쌌습니다. 총선 이후 더민주 최대세력은 이른바 친문계입니다. 더민주에는 사실 문재인 대세론이 강력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그러나 당 외곽에는 여전히 안철수라는 강력한 차기 주자가 있습니다. 게다가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의 아픔을 딛고 내년초 분위기 반전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내년 대선국면에서 문재인은 집권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차기 대선까지는 아직 1년 4개월여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대선국면에서 야권이 여권과 비교할 때 갖는 장점은 바로 역동성입니다. 더민주에는 문재인을 제외하고도 차기 주자로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는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구에서 당선된 김부겸 의원, 정계복귀에 시동을 건 손학규 전 상임고문,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모두 쟁쟁한 거물입니다. 정치적 비중으로 본다면 단순한 불쏘시개나 문재인 대세론의 들러리 이상입니다. 문재인 대세론의 보완재가 아니라 대항마나 대체제의 가능성이 커질 때 더민주 대선후보 경선은 국민적 이목을 끄는 역동성을 갖출 수 있습니다. 문재인은 내년 대선국면에서 한국판 ‘버니 샌더스’를 원군으로 얻어낼 수 있을까요.

문재인의 딜레마는 바로 이 지점입니다. ‘해보나 마나’ 문재인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 다른 차기주자들이 더민주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이미 두 번이나 야권 대선후보의 들러리 역할을 했던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대표적입니다. 흥행없는 무감동 대선후보 경선이 외연확장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감한 기득권 포기가 필수적입니다. ‘꼭 내가 아니어도 좋다’는 승부수는 양날의 칼입니다. 그리고 쉽지 않는 선택입니다. 신의 한수가 된다면 집토끼도 다독이면서 산토끼도 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집토끼도 돌아서고 산토끼의 마음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과연 문재인 대세론은 지나친 기우일까요? 어쩔 수 없는 필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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