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그룹의 인사 관행이 근본부터 바뀌고 있다. 연말 정기 인사에서 수시 인사 체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룹 안팎에선 “전자업의 특성상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다간 2류로 몰락한다”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위기감이 수시 문책성 인사로 바뀐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의 비정기적 인사 문화는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됐다. 작년 6월 삼성테크윈 대표와 임원들을 대거 퇴진시켰다. 한달 후에는 삼성전자 LCD 사업부장(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오너의 결단으로 예고 없이 수시로 이뤄지는 인사 문화’는 현대차그룹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의 인사스타일을 두고 ’럭비공처럼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정 회장은 잦은 인사를 통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 넣어 현대기아차의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삼성그룹이 이런 현대차그룹의 충격요법을 쓰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만하다.
2000년 현대기아차그룹 출범 후 매일 아침 6시30분에 출근하는 정 회장의 스타일을 이 회장이 닮고 있는 셈이다. 그룹 관계자는 “언제 회장이 찾을 지 모르기 때문에 임원들은 회장보다 항상 먼저 출근한다”고 귀띔했다. 두 그룹은 오너부터 주요 임원들까지 출근시간이 아침 6시 전후로 비슷해졌다.
삼성그룹도 최근 들어 계열사 사장 및 주요 임원들이 대외 활동 및 언론 노출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특히 ‘스타 경영인’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 보니 계열사 사장들이 언론 인터뷰 등에 응하는 일은 자취를 감췄다. 삼성관계자는 “과거 일부 스타 경영인이 활발하게 대외 활동을 했지만 결국 그룹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이때부터 경영인은 경영에만 전념한다는 문화가 자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업문화전문가들은 앞으로 이(異)업종간 기업 문화의 수렴 현상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진단한다. 산업화시대에서 창조경영시대로 넘어가면서 나타나는 대표적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설명이다. 최재윤 크로스 경영연구소 대표는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업종별 특성 때문에 기업 문화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면서 “지금은 업종 구분없이 디자인·창조 경영 등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면서 기업 문화가 빠르게 서로 유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