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도 쇠고기 협상뿐만 아니라 문제의 핵심 사안이라 할 수 있는 한미FTA 협상에 대한 완전한 내용 공개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상황인지라 직접적인 언급은 유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국제협상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느낀 점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협상을 잘 했는지 못 했는지를 판정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 중 한가지는, 협상을 끝내고 돌아간 상대방이 그들 편에 돌아가 협상 결과를 전달하는 내용 중에 얼마나 우리가 주장한 내용이나 증거자료 및 논리를 많이 담고 있는 가, 다시 말해서 우리 측의 주장이나 논리를 마치 원래 자기자신의 생각이었던 것처럼 “자기 논리화”하는지를 보면 된다.
협상 상대가 마치 우리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제대로 교육훈련시키는 것이야말로 고단수 협상꾼의 능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측이 한 말에 덧붙여서 스스로 살을 붙여 옹호 논리와 발언을 자발적으로 하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로선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국제협상컨설팅이 직업인 필자가 여러 기업들을 상대로 컨설팅을 진행하다 보면 간혹 이와 비슷한 상황을 발견하곤 한다.
대기업의 해외 주재원으로서 특정 국가의 어느 기업과 오랫동안 밀접한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일을 하다 보면, 간혹 피아를 구분 못하고 오히려 상대 기업의 입장이나 의견을 두둔하다 못해 심지어 본사의 전략이나 조치에 반발하고 나서는 현지 주재원이 문제의 핵심인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본사로서는 “그 사람과 업무 통화나 얘기를 하다 보면, 이 사람이 우리회사 사람인지 그 쪽 회사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 오히려 그 쪽 회사 사람보다 이 사람이 더 그 쪽 역성을 들 땐 황당하기 짝이 없죠.”라는 반응을 보인다.
필자는 이런 얘기를 들은 후, 당사자와 면담을 하면서 슬쩍 이런 얘기를 하면 그는 못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글쎄 서울 본사 사람들은 현지 사정을 모르니까 그래요. 알면 그렇게 말 못합니다.”라는 답변을 하곤 한다.
이런 상황을 일반인들이 직면하면 보통 진실게임을 벌이게 된다. 누구의 말이 맞고 틀린 것인지 시시비비를 규명하려고 들게 되고, 대부분 실질적 문제해결은 뒷전이고 일파만파 감정싸움으로 번져 자칫 그나마 유지하던 조직 내 결속마저 와해되면서 내부 분열로 치닫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실 확인을 위해서도, 상황 정리를 위해서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 컨설팅을 의뢰한 고객기업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수행을 위해서라도, 일단 해당 해외주재원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귀국 조치할 것을 제안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더 이상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칠 소지가 높거나, 이미 해를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협상가는 어떤 전략전술을 구사할까?
이 방법이 제대로 먹혀 들면, 협상 상대방은 자신의 조직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며 오히려 이제껏 적으로 여겼던 상대측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나아가서는 더 신뢰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조직을 위한 협상을 하고 온 것이 아니라, 상대의 정보와 논리로 자신의 조직을 향해 역설득을 펼치는 상황을 연출하게 하는 것이다.
링컨이 말했던가. “이길 수 없는 적은 차라리 친구로 만들라.” 라고. 그래서 적(상대)으로 하여금 적을 설득하고, 적(상대)의 입에서 우리의 논리와 타당성을 역설케 하라고.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한 게 아니라 당신네들 스스로가 그렇게 한 게 아니냐고 말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역시 뛰어나고 훌륭한 분들이라고 추겨 세워주면서 말이다.
이런 협상술은 비체계적으로 어설프게 쌓은 협상 지식과 경험, 상대의 협상전략전술을 치밀하게 분석하지 못한 채 부적절한 대응논리와 엉성한 협상 시나리오만 갖고서 “열심히 준비 했으니 이길 수 있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자신감에 빠져 있는 아마추어적 발상의 협상가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협상전략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는 더 이상 이념의 시대가 아니다. 겉으로는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무역주의를 주창하나, 실제로는 기업으로 대변되는 자국의 산업 이기주의를 유지 확대 하기 위해서 기존의 그 어떤 고귀한 이념도 주저 없이 짓밟을 수 있는, 한마디로 인정사정 보지 않는 新국수주의 시대인 것이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요구되는 거대 첨단 산업이나 국방력을 단시간에 육성 성장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국제협상 전문인력과 전략적 협상 시스템을 우리의 정부 조직과 기업에서 육성 확충하는 것은 그 보다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가능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전략적 국제협상력 제고는 더 이상 검토대상이 아니다. 협상력 부재로 인한 폐해와 파문은 이미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2008년 여름 밤을 뜨겁고 환하게 밝혔던 촛불집회는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 협상만을 꼬집은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외교통상부문에서의 협상시스템 부재를 비판하고 시급히 보완하라는 국민적 요구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경제와 안보를 우방국의 호의에 기대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그에 걸맞은 대외 협상력 확보의 필요성은 이제 촌각을 다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