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룡의 한방라운지)할미꽃

  • 등록 2004-12-16 오후 2:20:02

    수정 2004-12-16 오후 2:20:02

[edaily] “할미손은 약손” 어릴 적 배가 아파서 못 견딜 때 할머니가 배를 살살 어루만져주면서 자장가를 불러주면 참을 수 없던 통증이 거짓말 같이 사라지면서 스르르 잠이 들었던 아련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할미꽃은 우리나라 들녘 야트막한 산기슭 어느 곳이든 잘 자란다. 이른 봄날 할머니 산소 앞에 들렀을 때 고즈넉이 피어있는 할미꽃은 유년의 추억을 아스라이 되살려주기도 한다. 우리 배를 어루만져주던 할머니의 따스한 손길처럼 할미꽃은 주로 인체의 복부에 작용해서 통증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오래전부터 배가 아프거나 설사할 때는 할미꽃을 달여 먹여 치료했으니 이름만큼이나 친근하고 쓰임새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할미꽃은 한의학에서는 백두옹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할미꽃의 줄기 끝에 희고 가는 털이 아래로 드리워진 것이 마치 백두노옹(白頭老翁: 머리가 흰 할머니)과 비슷하다 하여 백두옹이라고 한다. 할미꽃은 음력 8월에 뿌리를 캐서 가을 햇빛에 말려서 약재로 쓴다. 할미꽃은 위나 대장에 작용하고 성질이 찬데다 쓴맛이 있다. 그래서 주로 복부에 염증이나 열이 있을 때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목부위에 생긴 영류(주로 목에 생기는 혹)나 나력(연주창)을 고치거나 사마귀 또는 머리가 헐었을 때 할미꽃을 달여 먹으면 좋다고 하고 있다. 이밖에 할미꽃은 아메바 원충이나 황색포도상구균 녹농균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다. 트리코모나스질염에도 효과가 있어서 질염이 있을 때 사상자와 함께 달인 뒤 물에 섞어 좌욕을 하면 염증을 가라앉히는데 좋다. 또 살균효과가 커서 피부병에도 도움이 되고 종기가 생겼을 때 화농을 주저앉히는데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할미꽃의 가장 큰 용도는 이질이다. 동의보감에 있는 이질의 종류는 모두 19가지. 이름을 보면 적리 백리 적백리 수곡리 농혈리 금구리 휴식리 풍리 한리 습리 열리 기리 허리 활리 적리 구리 역리 고주리 오색리 등. 이질에 대해서 상세하게 언급하고 약물사용을 구분한 것은 옛날에는 이질로 죽는 사람이 워낙 많았던 탓이다. 생사를 가늠하는 위험한 질병인 이질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두려움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질이 생기는 원인은 위나 장이 허약할 때 차거나 뜨거운 기운이 그 틈을 타고 대장이나 소장에 침입하기 때문이다. 열이나 냉한 기운이 장에 자극을 주면 설사가 나다가 이질이 된다는 것. 즉 음식을 절제하지 않거나 상한 음식을 먹고 섭생이 불규칙하면 위나 장의 기운이 손상을 받게 되고 이로운 물질이 체내로 흡수되지 못하고 내려가서 설사를 하게 되고 이것이 오래되면 이질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 동의보감의 설명이다. 할미꽃은 열이나 염증을 내리는데 효과가 있었던 만큼 열성이질에 주로 사용됐다. 이질로 인해 열이 나서 목이 말라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려고 하는 열리에 특히 효과가 있다. 열이 없거나 속이 냉랭한 이질에 사용하면 오히려 몸에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 마늘 등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질을 별로 겁내지 않는 경향이 있고 그 때문에 이질에 대한 관심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 항생제 내성이 있는 이질균이 발견돼서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과거에는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는 이질균이 발생한 경우가 드물었으나 이번에는 집단으로 발생했다고 하니 아무리 이질에 자신이 있다고 하는 우리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친숙한 약재이다 보니 자칫하면 할미꽃을 아무렇게 쓸 우려가 있으나 약간의 독성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이해룡 예지당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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