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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이 2021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 반 동안 기준금리를 무려 3%포인트나 올렸다. 기준금리는 연 3.5%로 15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가계 등의 이자 부담이 높아지면서 가계 빚이 줄었고 집값도 하락세다.
그러나 금리 인상의 목적이었던 물가는 잡히지 않고 있다. 한은은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을 3%에서 상향 조정할 것임을 예고했다. 전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작년 7월 전년동월비 6.3%에서 정점을 찍고 올 4월 4.2%까지 둔화했지만 대부분 석유류 기저효과에 불과하다. 금리 인상 효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소비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근원물가는 꺾이지 않고 있고 단기자금도 풍부하다. 고금리의 3대 미스터리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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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소비는 ‘죽지 않아’…가계 순저축률, 1999년 이후 최고
한은이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겠다는 것은 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지갑을 가난하게 만들어 수요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출 이자 부담이 대폭 늘어나고 집값이 떨어졌음에도 지표에 드러난 소비는 탄탄하다.
올 1분기(1~3월)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0.5% 성장해 한 분기 만에 플러스 전환했다. 그 덕분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0.3%로 플러스를 보였다. 한은은 “1분기 신용카드 결제액(실질, 신한카드 기준)이 1년 전보다 6% 증가했다”며 “외식·숙박, 화장품, 의복, 신발, 가방 등 대면 활동을 중심으로 3.3%포인트 증가한 영향”이라고 밝혔다. 마스크 착용 전면 해제, 각종 문화행사 확대, 결혼식 증가에 따른 가구·가전 등 내구재 소비 증가 등의 영향이다. 국산 승용차 내수 판매량은 3월 전년동월비 20.5%, 카드 국내 승인액도 9.0% 증가해 소비 증가세가 견고한 편이다. 소비심리 지수도 두 달 연속 반등했다.
② ‘끈적한’ 근원물가…수요 받쳐주니 ‘원가 전가’ 활발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기저효과로 4월엔 3%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근원물가는 사정이 다르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근원물가는 작년 11월 전년동월비 4.3%로 고점을 찍은 이후 하락하긴 했으나 3월 4.0%로 전월과 같은 수치를 보였다. 4월엔 3% 후반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전체 물가상승률을 상회할 것이라고 한은은 진단했다.
한은은 근원물가 하락세가 더딘 이유에 대해 작년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원가 부담이 2년에 걸쳐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4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전기·가스 요금 인상에 따른 2차 효과로 근원물가가 소비자 물가보다 천천히 떨어지고 있고 거리두기가 끝난 후 소비가 약간 회복세를 보여 서비스 물가 둔화 속도가 느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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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역사상 가장 빠른 금리 인상에도 ‘단기 자금’ 많다
한은이 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두 번이나 단행하고 사상 첫 7회 연속 금리 인상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역사상 가장 빠르게 금리를 인상했음에도 시중 유동성은 여전히 풍부하다.
만기 1년 이하 단기부동자금은 작년말 1688조5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5조5000억원, 7.3%나 급증했다. 단기부동자금은 현금, 수시입출식예금 등 결제성 예금, 만기 1년 이하의 단기저축성예금, 양도성예금증서, 환매조건부채권, 표지어음, 1년 이하 단기 채권 등을 합해 추정했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연 0.5%)였던 2020년엔 단기부동자금이 한 해 174조2000억원(13.8%) 늘어나 사상 최대폭 증가했고 금리 인상이 시작됐던 2021년엔 133조1000억원(9.2%) 늘어나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지만 3년 연속 100조원대 급증했다. 코로나19 이전이었던 2010~2019년, 10년간 연평균 60조원(6.6%) 증가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이는 기준금리 절대 수치가 경기를 갉아먹을 만큼 ‘긴축’ 수준으로 높아졌지만 과거에 풀린 돈이 워낙 많아서 이를 흡수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방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은은 작년 레고랜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도 사태로 단기 자금시장이 위축되자 11~12월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12조원 넘는 유동성을 공급해 단기 자금 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그 뒤로 한은은 1월 기준금리를 3.5%로 인상했지만 91일물 양도성 예금증서(CD) 등 단기 금리들이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일이 잦아졌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금융당국의 은행 예금·대출금리 인하 압박까지 맞물리면서 은행 예금·대출 금리는 기준금리와 무관하게 작년 가을 수준으로 내려갔다.
머니무브마저 시작됐다. 연초 이후 두 달간 MMF로 57조원의 자금이 이동했고 그 뒤로 빠져나가긴 했지만 여전히 37조원의 뭉칫돈이 MMF에 몰려갔다. 주식 투자 예비자금인 증권사 ‘고객예탁금’도 7조원 가량 유입됐다. 이 총재가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음에도 시장은 이를 믿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