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 발행이 줄어든 가운데 투자자들은 눈치보기에 한창이다. ESG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실패하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기대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HDC현대EP(089470)는 녹색채권 300억원 규모를 발행하려다 돌연 계획을 철회했다. 연초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로 투자자 유치가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물론 HDC현대EP는 화학제품, 고무제품, 플라스틱제품 등을 생산하는 만큼, 아이파크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아이파크 붕괴사고 이후 HDC그룹 전체가 사회적 비난을 받은 데다 발행하는 채권이 다름아닌 ESG 계열의 녹색채권인 만큼 더욱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 지난 1월 21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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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는 여천NCC가 2000억원(3년물 1200억원·5년물 800억원) 발행을 앞두고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신용등급이 A+인 데다 수익성도 개선 중이었지만, 여수 3공장 폭발사고가 발목을 잡았다. 회사채 수요예측을 사흘 앞둔 2월11일 여수 화치동 여천NCC 화학공장에선 열교환기 기밀시험 중 폭발사고가 발생하며 4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폭발사고에도 공장 생산설비의 기계적 결함이 없었고, 여수3공장이 4주간 가동을 중단해도 전체 생산 용량에서 차질을 빚는 부분은 1.5~2.0%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우려에 투자자들은 여천NCC의 채권을 외면했다. 유준위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이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요건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고 발생 후 한 달이 넘은 현재까지 여천NCC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요건에 해당하는지는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다만 현재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와 관련된 내용을 수사하고 있으며, 고용부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와 경영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기관투자자들이 여천NCC를 외면한 것은 높아진 ESG의 영향력을 시사한다”며 “산업안전이 ESG 평가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성이 있는 사고로 평판 저하, 영업 차질, 재무적 영향을 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 스스로 ESG에 대해 평가하고 주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ESG를 잘 지키는 발행사에 선제적인 투자를 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ESG에 반하는 기업들은 피하게 됐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물론 채권 시장을 둘러싼 분위기도 좋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지만, 특히 사망사고 등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는 기업의 ESG 채권 발행에 대해서는 각별히 더 주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