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가 열린 지난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 안숙선(75) 명창은 국립극장이 준비한 감사패를 받자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합니다”라며 짧은 인사말을 전했다.
| 지난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에서 안숙선 명창(가운데)이 유은선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왼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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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막한 그의 한 마디에 이날 함께 무대에 등장한 안 명창의 제자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한 관객은 “선생님 화이팅”이라며 안 명창의 마지막 무대를 응원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소리꾼’ 안 명창이 15년간 이어온 ‘송년판소리’와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안 명창은 지난 2010년부터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의 주인공으로 국립극장의 연말 무대를 빛내왔다. 안 명창의 대표 브랜드 공연인 셈이다. ‘송년판소리’는 내년에도 계속되지만, 안 명창이 주인공인 ‘송년판소리’는 올해가 끝이다.
이날 안 명창에게 수여한 감사패에는 “판소리 한바탕을 완창한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란 말 그대로 온몸으로 오롯이 겪어내는 시간을 의미한다”며 “판소리와 창극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책임감으로 노력해온 안숙선 명창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드린다”고 적혀 있었다.
| 지난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에서 안숙선 명창(가운데)이 유은선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왼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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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패를 받은 안 명창은 단가 ‘벗님가’로 화답했다. 무대에 서 있기조차 힘겨워 보였던 안 명창은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김청만 명인이 북 장단을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구성진 소리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인생의 희로애락 일장춘몽이 그 아닌가 (중략) 세상 풍진이 남이로구나. 이렁성 지내어 보세”라는 노랫말이 안 명창의 음악 인생과 만나 감동을 전했다. 이어 안 명창은 제자들과 민요 ‘동백타령’과 ‘진도아리랑’을 같이 불렀다. 안 명창은 한 손으로 부채를 들고 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추며 변함없는 예술혼을 보여줬다.
안 명창은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많은 제자를 키워냈다. 국립창극단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1979년 국립창극단 입단 이후 소리꾼이자 배우로 수백 편의 창극에서 활약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7년 동안 국립창극단 단장 및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창극 발전에도 기여했다.
| 지난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에서 안숙선 명창이 제자들과 함께 단가 ‘벗님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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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명창의 ‘송년판소리’는 끝났지만 안 명창의 소리는 제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진다. 이날 공연은 안 명창의 제자 30명이 출연해 안 명창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는 무대로 꾸며졌다. 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자 국립민속국악원 국악연주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유수정은 국립창극단 출신 남상일과 함께 ‘춘향가’ 중 ‘춘향모 어사 상봉’ 대목을 재치 넘치는 무대로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안 명창의 손녀로 국악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최은우 양은 소리꾼 조정규와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으로 할머니의 뒤를 이을 소리 실력을 뽐냈다. 전 국립창극단 단원이자 전북대 한국음악학과 교수인 김지숙, 스타 소리꾼이자 동국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활동 중인 박애리, 그리고 정미정, 서정금, 김미진, 김수인, 이나경 등 국립창극단 단원들도 무대를 함께 빛냈다.
| 지난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에서 안숙선 명창이 제자들과 함께 민요 ‘동백타령’과 ‘진도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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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명창은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할 당시 춘향 역을 많이 맡아서 ‘영원한 춘향’으로 불린다. 이날 공연에선 안 명창이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부르는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제작한 영상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1월 말 안 명창의 자택에서 이틀 동안 촬영한 영상이다. 비록 영상이지만 분홍빛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안 명창의 모습은 그야말로 ‘영원한 춘향’이었다.
이날 공연의 사회를 맡은 유은선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국립창극단에는 안숙선 선생의 그림자가 곳곳에 남아 있다”며 “선생이 일구어놓은 판소리와 창극이 더욱 발전하고 전 세계인이 즐기는 예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