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워치)회상! 2004년 8월

  • 등록 2006-01-23 오후 2:43:10

    수정 2006-01-23 오후 6:46:48

[이데일리 강종구기자] 한국은행에게 유가는 정말이지 골치아픈 존재다. 내리면 성장에도 좋고 물가안정에도 좋지만 오를 때면 성장과 인플레를 동시에 위협한다.

골치가 아픈 진짜 이유는 `전망`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벌써 3년째 "내년에는 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연초부터 배럴당 70불을 위협하는 국제유가를 보노라면 `올해도 틀리겠구나` 싶다.

◇ 2004년 8월 박승 총재 "기름값만 아니었다면 오히려 금리 올렸을 수도"

한은 금융통화위원들은 2004년 8월 콜금리를 3.75%에서 3.5%로 인하조치 했다. 금리인하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은 스스로 콜금리전망 설문조사 결과 100명중 단 3명만이 콜금리 인하를 사전에 맞추었다. 금리인하에 대한 시그널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언론들은 이날의 금리인하를 두고 `깜짝쇼`라고 했다.

전달 국회의원들 앞에서 업무현황을 보고하던 박승총재는 "금리를 인하해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면 당장 1%포인트라도 내리겠다. 그러나 금리인하의 효과를기대하기 어렵고 부동산투기 바람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했다. 그 전달인 6월에는 "(미국 출장중) 콜금리 인하 가능성을 기자가 물어와 황당했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박 총재는 7월 17일 제9차 동아시아·대양주 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하고 싱가포르에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안에서 유가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박 총재는 조사국에 유가문제와 IT경기에 대한 전면적 분석을 요구했고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때부터 금리인하 논의가 금통위에서 시작됐고 금통위는 8월 초순 인하쪽으로 기울었다.

2004년 8월 금통위는 처음부터 금리인하를 할 것이냐 말것이냐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저금리정책의 경기진작 효과에 대해 회의론이 팽배하던 때였지만 그만큼 유가급등이 가져올지 모를 `쇼크`를 두려워했다고 볼 수 있다. 박 총재는 금리인하 배경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기름값이 아니었으면 오히려 금리인상을 논의했을 것"이라고 했다.

◇ "아직도 남아 있는 불안요인"은 무엇인가

물론 유가는 작년에도 두바이유 도입가격 기준으로 거의 50% 급등했다. 그래도 한은은 두 차례 콜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2004년과 달리 경기는 연초 바닥을 찍고 살아났고 경기회복세가 일시적이 아니란 자신을 얻은 금통위는 10월과 12월 `저금리病` 치유에 돌입했다.

"그러나 4분기부터는 경제성장세가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견됨에 따라 장기간의 저금리기조 지속으로 인한 부작용을 점진적으로 해소해 나가는 방향에서 10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콜금리목표를 0.25%포인트씩 인상하였습니다"(박승총재 2006년 신년사 中에서)

굳이 신년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한은은 각종 공식 문건에서 작년 금리인상이 눈앞에 놓인 `인플레 잡기用`이 아니라 `저금리정책 철회用`임을 밝혔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기대인플레를 잡는 선제적 조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반대로 경기 재위축시 `금리인하 실탄 축적`이라는 선제적 조치의 효과가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금리인상의 전제는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 이었다. 그 자신감은 금융시장에 `2월 금리인상설`로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50% 이상의 시장참가자들이 2월 인상을 점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치솟는 유가, 급락하는 환율 앞에서 한은은 얼마나 자신이 있을까. 이달 박승총재가 "경기가 본궤도에 올라섰다"고 하면서 거론했던 "아직도 남아 있는 불안요인`은 결국 유가와 환율일 터이다.

환율이 실수요에 의해 서서히 내리고, 유가가 국제경제적 수급요인에 의해 서서히 오른다면 두려워 할 한은이 아니다. 그러나 급등이나 급락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시장 불안과 경제 펀더멘털에 동시에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가령 수출이 줄어드는데 투기세력이 주도해 환율을 급락시키고 있다고 한다면, 언제인지 몰라도 환율급등의 후폭풍을 예감하지 않을 수 없다(지금이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 간단치 않아 보이는 이란發 국제유가 급등

최근 국제유가의 급등 배경에는 이란의 핵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나이지리아 정정(政情) 불안, 러시아의 가스 수출 축소 등 악재가 겹쳤다.



특히 이란 핵 문제는 국제유가에 `핵폭풍`을 불러 오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12월 초순까지만 해도 원유선물을 매도하던 투기세력은 급속도로 매수로 돌아서 순매수로 돌아서기 직전이다.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들은 배럴당 100달러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유가 전망치를 서둘러 상향조정하고 있다.

한은이 국제 투자은행들의 전망을 무조건 믿는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골드만삭스의 경우 원유선물을 상당규모 매수해 놓고 가격상승에 `베팅`하고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은 내부에 이렇다할 유가 전망 장치가 없는 한, 이들의 의견을 무조건 내치기도 어렵다.

더욱 난감한 것은 이란 핵문제가 불러올 향후 유가 흐름이 전혀 예측불허라는 것이다. 당장 내달 이란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것인지가 논의될 예정인 가운데 최악의 경우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나 미국과 이란간의 전쟁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란발 갈등이 표면화된다면 이라크사태는 저리 가라 일 수 있다는게 문제다. 원유공급 규모나 매장량, 천연가스 매장량 등에서 이라크를 훨씬 웃돈다. 그렇지 않아도 공급확대가 제한돼 있는 원유 시장에서 이란의 공급이 막힌다면 그 공백을 채울 길이 없다.

◇ 폭풍우 속으로 손님 떠나 보낼까

올해 우리 경제는 내수를 기반으로 성장할 것이란게 한은의 전망이다. 그러나 그와 달리 세계 경제에 대한 시나리오는 작년보다 어둡다.



유럽과 일본의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의 최대 수출국인 미국과 중국의 성장세는 둔화될 전망이다. 수출과 성장에 유가나 환율보다 영향력이 큰 세계교역 신장률은 6%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미국과 중국 경기의 급격한 위축 위험도 경고하고 있는 마당이다.

국제유가 급등은 그래서 더욱 무섭다. 실수요 증가에 기반을 둔 유가상승은 글로벌 공급 확대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유가는 오르지만 중국과 인도에서 저가 수입품이 들어와 물가를 낮춘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둔화와 가수요에 의한 유가상승은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경기하강)을 연상케 만든다.

작년 두차례의 금리인상으로 한은은 일단 `급한 불`을 끈 셈이다. 앞으로는 경기흐름을 보아 가면서 점진적으로 `완화의 폭`을 줄이겠다고 했으니 서둘 이유는 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최근의 주가 급락은 콜금리를 서둘러 인상할 필요를 더욱 줄인다. 8.31부동산대책이 올해부터 본격 발효되는 것과 함께 자산가격에 대한 거품 걱정을 한결 덜게 만든다.

어차피 떠나야 할 손님이지만 번개와 벼락을 동반한 폭풍우 속으로 내 몰수는 없지 않을까.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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