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 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요즘 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9월 조정론이 불거진 이후 고공행진을 하던 뉴욕 증시 3대 지수가 실제 하락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내림 폭이 큰 건 아닙니다. 지난주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각각 2.15%, 1.69% 떨어졌습니다. 5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였는데, 하루에 1% 이상 조정 받은 적은 없습니다. 다만 연일 신고점을 경신하던 8월과는 시장 기류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지난주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 역시 1.61% 내렸습니다.
갑자기 왜 이럴까요. 기자는 약 한 달 전 [월가브리핑]을 통해 미스터리한 초강세장의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①전례를 찾기 어려운 풍부한 시중 유동성 ②주가 고평가 논란을 불식시킬 만한 생산성 향상 따른 기업들의 호실적 ③인플레이션 둔화 관측에 따른 정점론 등을 이유로 들었지요. 한 달 사이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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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부쩍 늘었다
가장 주목할 건 스태그플레이션 화두입니다. 경기가 침체함에도 물가가 폭등하는 아주 이례적인 현상인데요, 지난 1970년대 이후 수십년간 미국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월가 내에서는 한두달 전까지만 해도 ‘딴 세상 얘기’처럼 여겨졌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약간 더 심각해졌습니다.
1970년대가 어땠는지부터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지요. ‘마에스트로’ 앨런 그리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쓴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Capitalism in America)’를 보면, 그 당시 폐해가 적나라하게 나옵니다. 일부만 발췌했습니다.
“석유 파동(오일 쇼크)은 미국이 안고 있는 최대 경제 문제를 고질화시켰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과 실업이 위험하게 결합한 상태로서 케인스파 경제학자는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의 일정한 상충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을 들어 절대 발생할 수 없다고 말하던 것이었다. 1969~1982년까지 14년 동안 연 물가상승률이 5% 아래로 떨어진 적은 두 번 뿐이었다. 반면 연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 수를 기록한 것은 네 번이나 됐으며, 1980년 3월에는 14.8%를 기록하기도 했다. 동시에 높은 실업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정치적 격변을 불러 왔다. 노동자는 늘어나는 생활비를 따라잡기 위해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납세자는 오르는 명목소득 때문에 과세 구간이 높아지는 것에 반발했다. 1978년 부동산세는 갈수록 인상되는데, 정부로부터 받는 서비스는 정체하거나 감소하는 데 분노한 캘리포니아주 교외 주민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행동에 나섰다.”
그럼에도 당시와 비슷한 포인트가 적지 않습니다. 나라 경제의 총수요가 늘면 소득과 물가가 동시에 오르고 이는 곧 경기가 좋아진다는 것이니 고용은 나아진다는 게 필립스 곡선의 기본 철학입니다. 그런데 필립스 곡선이 고장 난 게 그때나 지금이나 유사합니다. 미국 재무부와 연준이 무지막지하게 돈을 푸는 총수요 정책으로 팬데믹에 대응해 왔는데, 고용 측면에서는 잘 먹히지 않은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델타 변이의 확산은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한 달 전 기자는 시안 챈 HSBC 최고투자책임자(CIO)의 말을 빌어 “시장은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시장이 높은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졌다는 겁니다. 때마침 당시 인플레이션 정점론까지 나왔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투자은행(IB)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마이클 하트넷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1단계에 진입했다”고 했고, 투자자문사 인프라캡의 제이 햇필드 최고경영자(CEO)는 “내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과는 차원이 다른 악재입니다. 경기와 물가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만큼 정책 수행이 어렵습니다. 수십년간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입니다. 금융시장 역시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확실성이 클 수 있습니다.
△14일(현지시간)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15일 엠파이어스테이트 제조업지수, 8월 산업생산 △16일 8월 소매판매,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 등이 줄줄이 나오는데요. 월가에서 스태그플레이션 화두가 확대될지 주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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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역사적인 기업 호실적 정점 지났다
기업 실적은 더 중요한 요인입니다. 증시 강세론의 강력한 근거가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면 높은 주가는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표 강세론자인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약 한 달 전 배런스와 인터뷰에서 “현재 특별히 싼 주식은 없다”면서도 “기업의 수익성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S&P 지수에 속한 기업 중 주당순이익(EPS) 증가율(발표 기업 489개 기준)은 88%를 기록했습니다. 2009년 4분기(199%) 이후 최고치입니다. 시장 예상을 넘은 어닝 서프라이즈를 보인 기업은 무려 87.7%에 달합니다. 10개 중 9개가 호실적을 기록했다는 의미입니다. 매출액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체 기업 중 87.1%가 깜짝 매출액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기업 실적 정점론(peak out)이 점점 불거지고 있다는 게 다수 월가 인사들의 설명입니다. 레피니티브 집계를 더 자세히 보면, 2분기 53달러까지 치솟은 평균 EPS는 3분기 49달러, 4분기 51달러로 정체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년 1분기 이후의 경우 52달러→55달러→56달러→58달러로 느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월가 금융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주요 IB들의 S&P 지수 전망치를 보면 올해 말까지는 약간 상향 조정한 곳이 많다”며 “최근 기업 실적이 워낙 좋았고 하반기에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만 “내년부터는 얘기가 달라질 것 같다”며 “IB들이 내년 지수 전망치를 크게 높이지 않은 건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다른 월가 관계자는 “2분기 실적이 너무 좋았지만 정작 컨퍼런스 콜은 암담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언급이 너무 많이 나왔고요. △공급망 차질 △임금 인상 △법인세 증세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3분기 어닝 시즌은 10월부터인데, 이때가 뉴욕 증시의 실질적인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어떤 거시 환경보다 기업 실적은 중요한 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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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긴축의 순간 예상보다 빠르게 온다
연준의 행보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경기가 꺾일 조짐임에도 연준은 11월 테이퍼링을 흘리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오는 21~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테이퍼링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11월 개시는 합의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제롬 파월 의장이 9월 FOMC를 통해 11월 테이퍼링의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시장의 예상보다는 약간 빠른 속도입니다.
테이퍼링은 엄밀히 말해 긴축은 아니지요. 채권 매입 속도를 줄인다는 건 여전히 돈은 푼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건 기계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항공모함’이라고 일컬어지는 통화정책은 신뢰성 측면에서 그때그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어서입니다. 테이퍼링은 당연히 긴축의 시작으로 봐야 합니다.
연준은 테이퍼링과 기준금리 인상을 별개라고 하는데, 이 역시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기자는 연준이 매우 신중한 긴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떠오르는 마당에 별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테이퍼링 이후 마냥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에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WSJ는 “연준은 내년 중반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 스태그플레이션을 화두로 꼽은 햇필드 CEO는 “연준은 내년 금리를 최소 두 번 인상해야 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연준이 점도표를 통해 공식적으로 내놓은 입장보다 더 빠릅니다.
지난 [월가브리핑] 때도 말씀 드렸지요. 버블을 얘기하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9월 조정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잇단 악재를 뚫고 강세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고요. 한 월가 국부펀드 관계자는 “주가 지수가 과거 어느 시점을 기준에 두고 돌아가는 관성이 있다는 건 없다”며 “오르면 오른 레벨을 기준으로 해서 더 상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단기 역사상 최고점에 있다고 해서 버블이라고 단정 짓는 건 위험하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9월 들어 뉴욕 증시의 흐름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사실은 숙지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현재 시장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특이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