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전 교수가 1991년 발표한 소설 ‘즐거운 사라’는 출판되자마자 8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였지만 언론과 문학계에선 ‘음란문서’로 규정됐다.
교수와 성관계를 하는 등 여대생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담은 ‘즐거운 사라’로 인해 마 전 교수는 결국 구속됐고, 소설은 판매가 금지됐다.
그 후 연세대에서 교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해직과 복직을 반복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이는 마 전 교수의 우울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마 전 교수는 올해 1월 등단 40년을 맞아 시집 ‘시선’을 내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난 실패한 인생”이라고 규정했다.
마 전 교수는 윤동주 시인 연구로 국문학계의 주목을 받다가 돌연 ‘즐거운 사라’를 내놓은 데 대해 “남들은 시대를 앞서 갔다고 얘기하지만 그런 거대한 소명의식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겉으론 근엄한 척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우리 사회의 행태에 한 번 시비를 걸어 본 것”이라며 “성에 대한 알레르기 현상을 깨부수고 싶었다. 그러나 대가는 너무 컸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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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즐거운 사라’에 다시 관심을 보이며 금서가 풀리길 기대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트위터를 통해 “사법당국이 마광수 교수를 구속한 것은 과도하고 미개한 법집행이었다. 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게다가 당국의 이 처사는 문단에서 그의 일련의 글들을 정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해버렸다. 마 교수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전했다.
황현산은 한 누리꾼이 마 전 교수를 문단이 외면한 책임을 사법당국에 떠넘기는 것이냐는 지적에 “외면하지 않았다. 300여 명의 문학 출판인들이 시위까지 했다”고 답했다. 이어 “문학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작품을 옹호하는 것인데 왜 옹호할 수 없느냐에 대해선 말을 삼가하겠다. 당시 문학계에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적인 문제를 내세울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마 전 교수는 ‘즐거운 사라’로 표현의 자유와 외설의 경계라는 질문을 또다시 사회에 던지고 떠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