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2조원대 손실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감시의 책임이 있는 산업은행에 경영정상화를 책임지게 함으로써 논란을 최소화하겠단 의도다.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이나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이 경우 충당금 적립으로 은행권의 타격이 클 수밖에 없어 ‘유상증자’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해석된다.
또 여론의 ‘십자포화’를 피하면서 대우조선 경영정상화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당국이 산은의 유상증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19일 “워크아웃과 같은 무리한 구조조정은 수주를 기반으로 하는 조선사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며 “대주주인 산은이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유치하도록 해 채권단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회수하지 않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자기자본은 4조 6000억원대다. 대우조선이 2분기 2~3조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을 입는다고 해도 당장 자본잠식은 아니다.
지금 300%대인 부채비율이 600%대로 치솟아 금융권으로부터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받기 어려워 신규 수주에 차질을 빚을 수 있지만 당장 유동성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은 작다. 현재로선 산은이 유증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는 게 당국과 채권단의 판단이다.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에 대해서는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워크아웃이나 자율협약을 추진하면 금융권은 20조원에 이르는 대우조선해양 익스포져(위험노출액) 중 최대 20%를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워크아웃 추진설이 흘러나왔을 때 산은이 서둘러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채권단 관계자도 “대우조선에 대한 금융권 여신의 대부분이 보증 형태로 구성돼있다”며 “대우조선이 정상적으로 선박 인도만 하면 돈을 떼일 우려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대우조선이 금융권에서 조달한 총 차입금은 19조 8057억원이다. 이 중 58%에 이르는 11조 6491억원은 RG 등 보증액이다. 대우조선이 애초 약속한 대로 선박 인도만 하면 보증을 선 은행은 돈을 떼일 우려가 거의 없다.
산은은 20일부터 대우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실사를 시작한다. 실사엔 12조 5000억원으로 대우조선에 가장 많은 돈을 댄 수출입은행도 참여한다.
삼일회계법인 등 2곳의 회계법인을 통해 대우조선은 물론 대우조선의 자회사를 정밀 실사한다는 방침이다.
산은 고위관계자는 “아직 실사 범위 등을 확정해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실사를 하다 보면 문제점이 꼬리 물듯 나올 수 있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실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실사가 끝나면) 대우조선이 부실을 감추기 위해 손실을 숨겼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증을 할 경우 대우조선의 수 조원대 부실이 일부 상쇄될 것으로 보이지만, 산은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최고재무책임자(CFO)는 5년 이상 산은 부행장 출신이 맡아 왔는데 산은이 이렇게 큰 부실을 모르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산은이 사전에 부실을 몰라도 문제가 되고 부실을 알고도 내버려뒀다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산은 관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손실을 본 현대중공업과 달리 대우조선은 실적이 좋아 문제는 없는지 확인했지만 ‘이상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상법상 산은이 직접 조사할 권리가 없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과 교수는 “산은의 감독 소홀로 상당한 부실이 났다”며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이를 메워야 하는 상황인 만큼 국책은행에 대한 감독 당국의 감시가 더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