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행장은 "기업 구조조정과정에서 은행은 의사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며 "환자가 살 수 있는 길을 고민하고 살리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올때 우산을 빼앗지 않는 것`을 넘어 기업이 어려울 때 회생할 수 있도록 처방하고 지원하는 게 은행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에는 지난 2003년 LG카드 부실사태 당시 주채권은행의 기업금융단장으로 채권단과 LG그룹간 협상 실무를 총괄했던 경험이 녹아있다. 카드사태 당시 금융권 `천덕꾸러기`였던 LG카드는 신한금융으로 인수돼 알짜사업으로 되살아났다.
이 행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은행 대표 영업맨이다. 은행장 취임 후 한달여간 은행 고객과 지인들을 만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했다.
그는 "하루 수백명의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며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에서는 은행장 방문이 처음이라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과장된 표현`이라는 지적에 정색을 하고 하루 스케줄표를 보여준다.
이데일리와 인터뷰가 있었던 19일. 오전에만 3곳의 기업 고객을 방문했고 40여명의 우리은행 명사클럽(명예지점장 모임) 회원과 오찬을 함께 했다. 오후엔 2개 언론사와 인터뷰 일정이 있었고 저녁엔 은행장 참석행사 2곳, 상가방문 일정 3곳이 잡혀있었다. 이 행장은 "지점장보고 열심히 하라는 백마디 말보다 상가를 직접 찾아가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특히 처가상을 더 챙겨야 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기업 고객을 만나 악수할 때 기업규모나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90도로 인사한다. 갖고다니는 명함도 여러 종류다. 카톨릭 신자를 만날땐 세레명, 시각 장애인을 만날 땐 점자가 기록된 명함을 건네는 식이다.
다음은 이 행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대담=김기성 금융부장, 정리=이학선 좌동욱 기자, 사진=한대욱 기자] -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의 법정관리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PF 사업에서) ABCP(자산담보부기업어음)는 잘못됐다고 본다. PF 사업은 4~5년의 장기 프로젝트다. 그런 사업에 단기성 CP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 문제를 제 2금융권과 조율하고 있다. (법정관리 철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회사도 가진 모든 것(라마다르네상스 호텔)을 내놓고 노력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 삼부토건은 담보로 내놓을 자산이 있지만 동양건설산업은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회사가 함께 법정관리를 철회하지 않으면 삼부토건도 어려울 수 있다. ▲헌인마을 PF 사업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있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 없다. 동양건설산업이 살아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두가지로 나눠 시나리오별로 대응할 계획이다. 동양건설산업이 어렵다면 제3자 인수 등을 포함해 여러가지 대응방안을 고민하라고 실무진에 지시했다. 구조조정에서 주채권은행의 역할은 의사다. 환자가 살 수 있는 길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환자를 살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동양건설산업의 주거래은행인 서진원) 신한은행장도 나와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삼부토건의 의지는 라마다르네상스 호텔을 담보로 내놓겠다는 것을 의미하나. ▲삼부토건과 르네상스 호텔은 별개회사다. 그래서 `꼬리자르기`를 할 것이라는 의혹이 있었다. (조남욱) 삼부토건 회장을 만났을때 "(삼부토건은 포기하고) 라마다르네상스만으로 장사하겠다는 거죠"라고 먼저 찔러봤다. 회장이 르네상스를 내놓아서라도 회사를 정상화시키겠다고 하더라. 가진 것을 모두 내놓겠다는 의사표시로 생각했다.
- 동양건설산업은 어렵다고 보는 것인가. ▲신한은행(주거래은행)이 할 일이다. 당연히 함께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자금) 지원 규모도 크지않다. 1000억원 수준이다.
- 부실 PF 대출이 저축은행 건설사 은행 등으로 계속 순환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PF 사업을 정상화할 방안은 없나. ▲하나의 정답은 없다. PF 사업장별로 자금 만기와 차입기관 구성이 각각 다르다. 또 땅도 파지 못한 사업장, 공사를 진행중인 사업장, 완공된 사업장 등 PF 사업장들도 다양하다. 사업장별 차주별로 각각 다른 처방전을 찾아야 한다. 실무진들에게 모든 사업장별로 사업성과 만기자금 현황을 파악하고 처방전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곧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 취임사에서 영업조직을 우대하겠다는 말도 했다. ▲현장 직원들은 본부 조직과 비교해 소외되고 힘들다. (본부) 부장들에게 본부장 승진하고 싶으면 지점으로 가서 성과를 내라고 했다. 현장에서 잘하는 직원 승진을 우대하겠다. 은행 본부로 오기 싫어하는 조직으로 만들겠다.
- 신한금융은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한다고 한다. 우리은행에서는 그런 고민이 없나. ▲우리은행에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신탁 PF 등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은 철저한 사업부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업본부장과 은행장을 제외하면 다른 부행장이 다른 사업부의 업무를 전혀 알 수 없는 구조다. CEO가 모든 업무를 챙길 수 없다. 현 시점에서 사업부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최소 여러사람이 챙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 은행 조직이 하나의 사업을 크로스체킹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겠다는 의미인가. ▲본부 조직에 대한 경영 감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과거 (내부) 검사는 사고 가능성때문에 영엄점 위주로 했었다. CDO CDS로 2조원 손실을 냈지만 손실에 관여한 직원은 100명도 채 안된다. 본부 정책 실패다.
- 올해 은행 수익은 어느정도로 예상하나. ▲1분기 괜찮은 성적표가 나왔다. 올해 부실 정리하더라도 1조5000억원~1조6000억원의 이익은 나지 않을까 기대한다. 현대건설 매각차익을 활용해 부실 자산을 빠른 시일 내 떨고 갈 생각이다. 계획을 짜고 있다. 부실 자산을 많이 가진 상황에서 이익을 너무 많이 내는 것도 좋지 않다. ◇ 이순우 행장은 누구? 이 행장은 인사 홍보 개인금융 기업금융 국제 등 은행의 주요업무를 두루 거친 정통 뱅커(은행원)다. 특유의 친화력과 에너지로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월말 행장 취임 후 기업이나 대학, 병원 등 주요 고객을 직접 방문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하루에 몇명의 고객을 만나느냐는 질문에 "여럿이 모이는 식사자리까지 포함하면 수백명은 될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행장의 표정 하나도 직원들에게는 격려나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며 가급적 표정을 밝게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이 행장은 지난 1999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합병 출범 직후 초대 인사부장을 맡아 조직을 관리했다. 2002년 기업금융단장을 맡은 이후 카드사태가 터지면서 LG카드 구조조정 실무를 총괄했다. 2004년말 개인고객본부 담당 부행장이 된 후에는 은행영업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냈고 지난 3월 우리은행장으로 선임됐다. 1950년생 경주 출신으로 대구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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