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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슨 전차`를 확 바꿔버린 독일축구의 `개혁가` 클레스만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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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공]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월드컵 4강에 오른 독일 축구대표팀은 독일의 우상이 됐다. 부임 2년 만에 위기의 독일 축구를 확 바꿔 놓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기적의 손이자 개혁의 상징으로 칭송 받고 있다. 독일인의 행복 지수를 단숨에 끌어 올린 마흔두 살 ‘개혁가’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2004년 7월 26일 클린스만이 인수 받은 독일 대표팀은 유럽축구선수권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예선 탈락한 ‘녹슨 전차’였다. 독일축구협회는 내정했던 고명한 지도자들이 모두 고개를 흔들자, 그나마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스타 출신 클린스만에게 대권을 넘겼다. 클린스만은 월드컵에 3차례 출전해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한 세계적인 공격수였지만 지도자로선 한 번도 감독을 맡아 본 적이 없는 ‘애송이’다.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빵집 주인 아들로 제빵수업까지 받았던 클린스만은 축구계 선배들의 뺨을 후려치는 발칙한 ‘개혁안’을 줄줄이 구워내며 도전에 나섰다. 클린스만은 “독일 축구의 전통적 방식은 유통기한이 지났다”며 “미국 프로스포츠의 첨단 시스템을 도입해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프로젝트 2006 지휘자’로 한정하고, 나머지 분야는 모두 전문가들에게 일임했다. 미국 피트니스 전문가에게 체력 훈련을, 스포츠 심리 전문가에게 선수들의 마인드 컨트롤을, 스위스 출신 전력 분석관에게 정보 수집을 맡겼다. 감독의 주요 기능이었던 언론 접촉과 일정 조정은 매니저에게 넘기고, 일상적 전술 훈련도 모두 코치에게 넘겼다.
그는 적극적인 공격 축구를 표방하며 선수들의 세대 교체를 단행했다. 공격수 포돌스키와 수비수 메르테자커 등 20대 초반 선수들이 중용됐다. 이 과정에서 독일 축구 대부인 베켄바우어의 지지를 받고 있던 골키퍼이자 주장인 올리버 칸을 부동의 ‘넘버 원’ 자리에서 끌어 내리고, 현 주전 골키퍼인 옌스 레만과 경쟁을 시켰다.
월드컵이 열리자 모든 상황은 클린스만의 구상대로 진행됐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빠른 템포, 과감한 공격 축구에선 더 이상 ‘녹슨 전차’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클린스만은 선수들을 직접 지도할 능력은 없었지만, 독일 축구에 가장 필요한 개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미국식이건 독일식이건 혹은 브라질식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클린스만의 축구 개혁은 독일의 다른 분야에서도 좋은 역할 모델이 될 것”이라고 칭송했다. 클린스만의 ‘뉴 저먼 사커’가 독일 개혁의 상징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