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지영한기자] 무서운 속도로 사세확장을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005380)와 하루하루 쇠락을 거듭하고 있는 미쓰비시자동차의 운명은 한마디로 `역전드라마` 그 자체다.
과거 미쓰비시차는 엔진과 디자인분야의 앞선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차를 지도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당시 현대차는 독자기술 확보를 위해 미쓰비시차의 조그마한 기술지도에도 감사해하던 때였다.
지금은 사세 뿐만 아니라 생산규모, 품질, 기술수준 등 모든 면에서 현대차가 절대 우위에 섰다. 20여년전 전술을 전수하던 미쓰비시차가 이제는 현대차의 엔진기술을 로얄티를 주고 사들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역전 드라마 치고도 너무나 극적인 엇갈림이다.
◇미쓰비시차, 한때 `현대차의 스승`
연혁면에서 현대차는 미쓰비시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일천하다. 미쓰비시차는 지난 70년 미쓰비시중공업에서 독립, 회사로서의 미쓰비시차 역사는 67년에 출범한 현대차보다 젊다.
그러나 미쓰비시차는 1870년 창업한 쓰쿠모상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본최고(最古)의 자동차 메이커다. 이미 1917년에 피아트를 모델로 한 일본의 첫 양산차인 `모델A`를 만들어냈다.
1959년엔 `미쓰비시50`을 시작으로 독자모델을 갖게 됐고 70년대엔 경승용차인 미니카에서부터 한국에 그랜저로도 도입된 대형 고급승용차 데보네르(Debonair)에 이르기까지 풀라인업을 구축, 종합자동차 메이커로 변신했다. 90년대엔 휘발유 직분사엔진(GDI)을 세계 처음으로 실용화했다.
미쓰비시차는 이미 79년에 연간 생산규모가 100만대를 돌파했다. 당시 현대차의 생산대수가 7만1000대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두 회사의 외형이 크게 비교된다.
현대차의 경우엔 회사가 출발한지 근 20년이 흐른 지난 86년에야 누적 생산대수가 100만대를 넘어설 수 있었다. 연산 100만대를 넘어선 것은 지난 95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현대차-미쓰비시차, 73년부터 제휴..82년엔 자본제휴까지
이처럼 과거 양사간의 격차는 엄청났다. 현대차로선 미쓰비시차가 본받아야할 선진 모델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 현대차가 2010년 글로벌 톱5를 노릴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같은 배경에는 과거 미쓰비시차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양사를 말할 때 `사제(師弟)관계`란 말이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유이다.
현대차와 미쓰비시차의 제휴역사는 70년대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차의 초기 제휴선은 유럽계였지만 73년 가솔린엔진·변속기·후차축 제조를 위한 기술협조 계약을 체결하면서 미쓰비시차와 첫 인연을 맺었다.
81년엔 양사가 기술제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이듬해인 82년4월 미쓰비시차와 미쓰비시상사는 현대차 지분을 각각 5%씩 매입, 미쓰비시차와 현대차는 자본제휴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83년엔 시리우스 엔진·변속기 계약이, 85년엔 L카(그랜저) 관련 계약도 체결됐으며 90년대엔 미쓰비시차의 `파제로`와 `샤라오`가 국내에 각각 갤로퍼와 싼타모로 도입돼 히트를 치기도 했다.
특히 현대차는 70년대 미쓰비시의 엔진기술을 전수받아 독자모델인 포니를 개발했고, 현재 미국 수출용 쏘나타에 탑재된 시리우스엔진이나 양사가 공동개발한 에쿠스에도 여전히 미쓰비시차의 흔적이 남아있다.
◇현대차, 글로벌 확장전략 순항..미쓰비시차, 생사기로에
지금은 사정이 너무나 달라졌다. 현대차가 차세대 글로벌 플레이어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미쓰비시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자금지원이 돌연 취소됨에 따라 법정관리로 가느냐 마느냐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미쓰비시차는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과도한 차입경영이 문제가 됐다. 돈이 안되는 해외사업을 크게 벌여놓은 반면 캐쉬카우인 일본 내수시장에선 도요타, 닛산, 혼다에 밀리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됐다.
앞서 96년엔 미국 현지공장에서 700명의 여성직원들이 성희롱을 당했다는 소송사건에 휘말렸다. 미쓰비시차는 금전적인 손실은 물론이고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성희롱 기업으로 낙인 찍히게 됐다.
또 2000년에는 일본에서 지난 20년간 자사의 불량 부품을 은밀하게 교체해 준 사실까지 드러나 미쓰비시차의 브랜드 이미지는 외국 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도 땅바닥에 떨어졌다.
결국 자금난으로 신모델 개발과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으면서, 차도 안팔리고 브랜드 가치도 떨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됐다.
반면 현대차는 강력한 내수장악력과 외환위기 기간중 해외진출에 신중한 채 수출에 주력한 덕분에 재무적으로 강한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 또한 이같은 체력을 바탕으로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에 주력한 결과 가시적인 성과도 쏟아지고 있다.
◇현대차, 생산규모·품질·신용등급서 압도..엔진기술까지 逆전수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 미쓰비시차는 GDI 엔진을 개발해낸 저력이 아직도 있고, 승용부문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레저용차량(RV)분야에선 나름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쓰비시차는 이제 현대차의 경쟁이 되지 못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미쓰비시차가 몰락했다기보다는 현대차가 오는 7월 NF(프로젝트명)쏘나타에 장착할 중형 세타엔진을 미쓰비시차에 돈을 받고 팔 정도로 크게 성장한 까닭이다.
외형부터 차이가 난다. 지난해 현대차는 국내외에서 189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했지만 미쓰비시차의 생산규모는 153만대를 기록, 뒤처지고 있다.
특히 글로벌 메이커들의 뒷심을 가늠케 하는 내수부문 생산과 판매는 현대차가 2배 이상 앞서고 있다. 작년의 경우 현대차는 국내에서 164만대를 생산했지만 미쓰비차는 75만대에 그쳤다.
품질면에서도 현대차가 크게 앞서고 있다. JD파워가 최근 발표한 2004년 IQS(초기결함지수)평가에서도 현대차는 102점을 받아 도요타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지만 미쓰비시차는 산업평균(119점)에도 크게 못미치는 130점을 받았다.
재무적으로도 미쓰비시차는 악순환의 고리가 심화되고 있는 반면 현대차는 차량판매가 늘어나면서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와 무디스(Moodys)는 앞다퉈 미쓰비시차의 등급을 하향조정하고 있는 반면 현대차에 대해선 투자적격 등급으로 상향조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쓰비시차가 자금난에 시달리다 말레이시아 최대 자동차업체인 프로톤(PROTON)과 자본·기술제휴를 청산하자 국내외에선 현대차가 프로톤의 새로운 제휴선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역시 현대차와 미쓰비시차의 위상변화를 느끼게 하는 대목.
현대차의 한 임원은 "현대차는 미쓰비시차로부터 정말로 열심히 배웠다"며 "특히 미쓰비시차가 기술면에서 현대차를 크게 앞섰던 과거엔 우리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달려들었다"며 지난날 師弟관계를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