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장들의 잇따른 대국민 사과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수장의 잇따른 사과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과연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어떻게 국민과 금융기관, 금융시장을 상대로 신뢰성있고 효율적인 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개혁의지 퇴색과 노동계 파업 등 사회 각층의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경제팀에 자꾸 흠집이 가해질 경우 구조조정 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진념 경제팀의 "사과행진"은 공적자금 추가조성 단계에서부터 시작됐다.
진 장관은 8월23일 기자간담회에서 "결과적으로 공적자금을 추가조성하게 된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동의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진 장관은 9월22일 공적자금 40조원 추가조성에 즈음한 기자간담회에서 "경위야 어찌됐든 당초 자금으로 부족해서 도와달라 말씀 드리게 돼 경제팀장으로서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진 장관은 이후 국회 설명과정에서도 공적자금 추가조성에 대해 사과를 했고 최근에는 당시를 회상, "국회의원들이 나더러 사과장관이란 별명을 붙여줬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21일 6개 은행 완전감자에 대한 사과가 추가조성된 공적자금을 쓰려는 사전절차 과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하면 일종의 아이러니다. 추가 조성을 하면서 사과하고 추가조성한 공적자금 쓰면서 또다시 사과를 하고 있는 셈이다.
금감위원장도 사과경력으로 따지면 만만치 않다. 금감위는 지난 10월27일 김영재 부원장보가 결국 정현준 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나타나자 대변인 명의로 공식사과문을 발표했다.
강 대변인은 "감독당국으로서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우선 국민들에게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금감원 간부가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데 대하여 죄송스런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위원장도 이후 신문이나 방송 인터뷰, 국회 등에서 수없이 사과한다는 말을 해왔다.
두 사람의 사과는 11월부터는 합동으로 진행됐다. 지난달 29일 진 장관과 이 위원장은 잇따른 금고사고와 관련, "금융감독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국민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라며 합동 사과문을 발표했다. 문구도 간곡하게 바뀌었다.
그쯤에서만 끝났더라도 경제부처내에서 사과와 관련한 장탄식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로부터 한달이 채 못돼 진 장관과 이 위원장은 구조조정 대상은행 감자관련 정부발표문을 낭독했다.
"은행정상화 등을 위해 노력한 지역주민을 포함한 선의의 소액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쳐 드리게 된 점에 대하여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는 내용과 함께 소액투자자 손실보상을 위해 신주인수청약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그동안 기존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에 대해 완전감자를 할 경우 쏟아질 비난을 몰랐던 것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기존에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감자가 없다는 전임자의 말때문에 차등감자를 하는 것도 어렵다는 결론에 최종적으로 도달, 6개 은행 모두에 대해 완전감자 결정을 내렸다.
한 고위관계자는 "완전감자에 따를 비난이 20%라면 차등감자를 했을 경우의 비난은 80%정도라고 봤다"면서 "하지만 대통령의 대책강구 지시를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고 여론화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매듭은 짓고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과연 정부정책이 대국민 사과를 할 만큼 큰 문제가 있었는지, 정도에 상관없이 문제가 생길때마다 사과를 해야 하는지, 그럴 경우 정부정책이 신뢰를 얻는 것인지 아니면 잃는 것인지, 정부가 계속 사후에 밀리는 모습을 보일 때 과연 구조조정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 것인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어쨋거나 더 이상 사과할 일도, 사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