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속의 물가상승)과 제2의 IMF를 거론할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정책적 한계에 부딪힌 정부 대신에 입법권을 거머쥔 여당이 나섰다.
방점은 `경기부양`에 찍혀 있다. 그러나 감세의 대상과 효과를 놓고 벌써부터 논쟁이 뜨겁다. 누구를 위한 감세인지, 대규모 감세가 재정 건전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감세의 온기가 과연 윗목으로 전달될 지 등 제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edaily가 한나라당의 감세 드라이브 이후 달아오르고 있는 감세 논쟁을 시리즈로 정리했다.[편집자]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3일 서민층의 수요가 많은 품목들의 부가가치세를 세금환급 방식으로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감세문제가 논란의 핵심으로 다시 떠올랐다. 한나라당은 소득세 과표구간을 조정하거나 소득세율을 낮춰서 서민층과 중산층의 소득세도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전면적인 감세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그동안 정부와 한나라당이 내놨던 감세안들은 재산세나 법인세 등 일부 부동산 소유자들이나 기업들의 세금문제로 논란의 범위가 비교적 제한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꺼내든 부가세와 소득세 감면 방침은 파급효과가 거의 모든 국민들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수위도 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감세를 강하게 주장하는 쪽은 엄밀히 말해 '정부'라기보다는 '한나라당', 구체적으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다. 감세를 주장하는 이유와, 특히 부가세와 소득세까지 손대겠다고 밝힌 배경은 3일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발언에 그대로 녹아있다.
◆ 전면적 감세카드 `왜`..경기회복 대안이 없다?
임태희 의장은 3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 기획재정부와 실무 당정협의 결과, 전반적으로 세율 인하 여력이 생겼다고 보고 세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경제가 어렵고 국민 고통분담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세 부담 취약계층부터 집중 인하하고 다른 부분은 경제 현실을 봐가며 인하해 나가자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이 현 상황에서는 별로 마땅한 게 없다는 게 감세카드가 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성장률은 떨어지면서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성장률이 악화되는 딜레마가 생긴다. 통화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는 데는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문제다.
재정을 투입하는 정책으로는 이미 고유가 민생대책을 내놨지만 국회에 계류중인 상황. 추경 역시 국회일정이나 분위기 상 정부가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카드도 아니다. 특히 세금을 더 걷어 정부가 서민층을 지원하는 정책은 현 정부의 코드와도 거리가 멀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금이 과도하면 국가 경제 전체가 위축된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시각"이라면서 "감세는 임기동안 계속 추진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 `부동산 살리자` 취지는 공감하지만…
부동산 관련 세금 인하가 감세정책의 첫 타자로 등장한 것도 경기부양과 무관하지 않다.부동산 거래활성화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의 논란은 여전하지만 거래 활성화를 위해서는 거래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여러가지 세금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문제는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의 효과가 어디로 가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는 점이다. 가장 큰 논란이 '부유층만을 위한 감세' 문제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종부세 완화 발의 이후 야당과 시민단체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작심하고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한나라당이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감면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이같은 논란을 의식한 측면이 강하다.
부동산에 붙는 재산세와 기업들이 부담하는 법인세를 깎아주는 것은 그 효과가 서민층에게 흘러간다고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부자들이 1차적으로 혜택을 입는 정책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 감세가 최선인가..꼬리를 무는 논란들
정부가 지난해 걷어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을 유가급등으로 인한 서민 부담을 줄이는데 쓰기로 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임태희 의장은 부가가치세도 유가환급금처럼 먼저 내고 나중에 서민들에게만 환급해주는 방식으로 정밀하게 '서민층 타게팅'을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부가가치세를 환급해주는 정책에 대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독특한 정책이라고 평가하면서 마뜩잖은 반응도 보이고 있다. 세금 정책으로 서민들을 돕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수라는 지적이다.
조세 정책에 정통한 한 정부 관계자는 "원래 세금으로는 부자를 가난한 사람으로 만들수는 있지만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는 못 만든다는 게 조세정책의 원리"라면서 "감세는 원칙대로 가고 서민층을 위한 복지정책은 별도로 정부의 재정지출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감세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다고 감세카드에 서민용 정책을 급하게 끼워넣는 건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공약은 세금을 줄여서 서민들을 돕자는 게 아니라 조세부담률이 낮아지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서 국가간 경쟁에서 뒤쳐지지 말자는 것"이라며 "과거 폐쇄경제 시대에는 세금이 부의 재분배 기능을 했지만 이제는 글로벌 자금과 노동력을 유치하는 수단과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금 정책의 기조가 바뀐 상황에서 부의 재분배를 위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물리자는 주장은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포퓰리즘의 기반으로 급조된 감세정책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겠느냐도 논란거리"라면서 "세금이 조금 잘 걷힌다고 모두 감세로 돌려버리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감세 효과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원 소장은 "경기침체로 인한 서민과 중산츰의 부담을 줄여주고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소득세율 인하가 필요하다"며 정부와 여당의 정책에 지지를 표했다. 반면 이재민 연세대학교 교수는 "감세를 통한 소비진작이 서민층에 이익이 될 가능성은 낮다"면서 감세를 경기대책으로 활용하는 접근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