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탈탈 턴 조사에도 빈 손…한화 일감몰아주기 '무혐의' 왜?

[한화 일감몰아주기 무혐의]②
2015년 주진형 한화증권 사장 경질설 의혹제기로 시작
총수 관여, 그룹차원 조직적 개입 입증 증거 못찾아
"입증 어려웠다면 사무처 단계서 무혐의 처분내렸어야"
  • 등록 2020-08-24 오전 10:05:00

    수정 2020-08-24 오후 11:53:44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5년에 걸쳐 강도 높은 조사에 나섰던 한화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24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한화 총수 또는 그룹이 아들 삼형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지시·관여했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데다 해당 거래가 정상거래에 비춰 유리했다는 점도 입증 못한 탓이다.

조사에 나설 당시 이미 대부분 과거 자료들이 사라져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는 게 공정위측의 입장이나, ‘스모킹 건’을 찾기 위해 무리하게 5년간 조사를 끌어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화 S&C는 왜 공정위 감시망에 올랐나

한화S&C는 한화 정보 부문이 분사해 2001년 설립된 IT서비스 및 솔루션 개발업체다. 1994년 한화그룹 계열사의 전산자원 및 인력을 통합해 정보 부문을 만들었다가 별도 법인으로 분사했다. 중복 투자를 막고 그룹 전체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차원에서 한화S&C를 설립했다.

그러다 2005년 한화S&C 지분을 보유하던 김승연 회장과 (주)한화는 김동관, 김동원, 김동선 등 삼형제에 지분 100%를 넘겼다. 그전까지 적자에서 허덕이던 한화S&C는 이후 매출 증가에 힘입어 자본잠식에서 벗어나고 실적이 개선됐다. 한화그룹은 당시 삼형제에게 지분 전량을 넘긴 배경에 대해 출자총액제한제도 및 부채비율 규제로 계열사들이 지분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삼형제에게 지분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통해 꾸준히 매출을 올렸던 한화S&C는 2015년 국정감사에서 일감몰아주기 논란에 휘말린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은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사장의 경질설이 ‘일감 몰아주기’ 반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주 사장은 일감몰아주기 등을 의식해 기존에 한화S&C를 통해 구매하던 한화투자증권의 전산장비를 IBM으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했고, 껄끄러웠던 한화그룹이 그를 경질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공정위 조사를 촉구했고, 공정위도 그해 10월 한화그룹 일감몰아주기 조사에 착수했다.

올초 공정위 사무처(검찰 기능)는 2015년 1월부터 2017년 9월30일까지 한화 계열사가 전산 시스템 구축 관련 일감을 IT 서비스업체인 한화S&C에 부당하게 몰아줬다고 보고 한화계열사 86개사 중 29개에 대해 검찰 고발이 필요하다는 심사보고서(공소장 기능)을 상정했다. 이 기간 한화S&C는 김 회장의 아들 삼형제가 지분 100% 보유했고, 한화S&C는 2018년 한화시스템과 합병하기 전까지 5000억원 내외의 매출액 절반 이상을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일으켰다.

사무처는 한화S&C가 시스템통합 서비스 계약을 맺으면서 계열사로부터 애플리케이션 관리 서비스(AMS)에 대해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거래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공정거래법 23조2 4호)를 했다고 봤다. 아울러 데이터 회선 사용료와 상면료(데이터센터 서버 자릿세) 비용의 경우 정상 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23조2 1호)했다고 판단했다.

사무처는 이같은 일감몰아주기를 고안한 것은 아들 3형제에 대한 부당한 부의 이전(터널링)을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다른 계열사에는 삼형제에 대한 지분은 없고 한화S&C에만 지분을 넣은 후 다른 계열사에서 발생 가능한 매출액을 총수일가에 이전시키고 배당 등을 통해 오너일가가 이익을 챙겨 ‘승계구도’가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2000년대 대기업들이 IT서비스, 광고, 물류 계열사에 총수일가 지분을 태워 부당 지원을 한 정황과 유사하다는 게 공정위가 그린 ‘그림’이다.
◇정황만 있고 증거는 왜 못 잡았나


대규모 내부거래는 그 자체만으로 불법은 아니다. 대기업은 그룹내 시너지 창출 차원에서 내부거래를 하기 마련이다. 특히 공정위는 정황만 가지고는 일감몰아주기 제재할 수 없다. 총수가 관여·지시했다는 증거를 잡거나, 정상거래와 비교해 상당히 유리하게 거래를 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위 사무처는 이를 모두 입증하지 못했다. 우선 애플리케이션 관리 서비스(AMS) 거래를 법 위반으로 보려면 한화계열사들이 △합리적 고려 없이 △상당한 규모로 △부당하게 한화S&C와 거래했다는 점을 각각 입증해야 한다.

위원회는 해당 거래가 통상적인 거래 관행에 비춰 부당한지를 입증 못했고, 그룹 또는 특수관계인의 관여·지시에 대한 증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심의절차종료를 결정했다.

심의절차종료는 위원회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의미하나, 처분시효가 오는 9월에 끝나는 만큼 사실상 ‘무혐의’ 처분과 다름 없다.

위원회는 데이터 회선 사용료와 상면료에 대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거래가 불법이 되려면 공정위가 정상거래 가격을 책정한 뒤 한화S&C가 계열사로부터 웃돈을 주고 거래했다는 것도 공정위가 입증해야 하지만 사무처는 정상가격을 제대로 산출하지 못했다.

특히나 총수 관여 또는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일감몰아주기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전혀 찾지 못한 점은 뼈아픈 결과다. 초기조사에서 관련 증거 확보에 실패한 탓이다. 공정위는 2015년10월경 조사에 착수했을 때 2014년 이전 자료를 거의 확보하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검찰에서 한화 비자금 수사에 나선 이후 한화 측이 2014년 이전 자료는 사실상 ‘리셋’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진술 등으로 증거자료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고 결국 2015년 이후 자료로만 입증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증거자료가 이미 사라졌다고 설명하지만 증거자료가 없는 상황인데도 5년간 무리하게 조사를 이어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공정위는 처분시효(5년)이 종료될 때까지 수십여개 한화 계열사를 대상으로 6차례에 걸쳐 44일간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다. 한화 입장에서는 5년간 공정위 조사 리스크를 끌어안고 있었다는 얘기다.

대형 로펌 한 관계자는 “증거자료가 없고 일감몰아주기 입증이 어렵다면 전원회의가 아니라 사무처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어야 했다”면서 “무혐의 시 감사원 조사 등 후폭풍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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