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이민혁(35·왼쪽사진)씨. 그가 바로 삼성 애니콜의 히트메이커, 즉 `신의 손`이다.
정식 직함은 삼성전자(005930) 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 디자인2그룹 과장. 하지만 그냥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훨씬 더 어울린다. 벤츠폰(SGH-E700), 블루블랙폰(SGH-D500), 블루블랙폰Ⅱ(SGH-D600) 등 삼성 애니콜의 히트작을 모두 디자인한 스타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이민혁 삼성전자 디자이너는 "휴대폰 디자인은 소비자의 취향이나 트렌드보다 반박자 정도 앞서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저만치 앞서가 버리면 소비자는 그 디자인을 수용하기 힘들고 결국 외면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험적인 디자인과 현실적인 디자인,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고객수요를 이끄는 것이 휴대폰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이 그의 디자인 철학인 `반박자론(論)`이다.
가을바람이 쌀쌀한 저녁, 이민혁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 디자인에 얽힌 얘기들을 나눴다.
◇디자인 아이디어, 어디서 얻을까
이민혁 디자이너는 "디자인 할때 특정 인물이나 동물의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라며 "문근영씨, 이효리씨를 떠올려 블루블랙폰 디자인한 것은 아니에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디자이너는 "동물이나 사물, 기하학적인 형상 등에서 복합적인 이미지를 추출, 믹스해서 디자인합니다"라며 "모양뿐만 아니라 색채나 재질도 때때로 디자인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손으로 직접 하지는 않고 각종 3D 디자인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아이디어를 얻기위해 해외 박물관을 자주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물관에서 좋은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얻습니다"라며 "특정 사물을 보는 것보다 다양한 이미지를 뽑아낼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애니콜 디자인의 특징과 시사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 디자이너는 "휴대폰과 핸드백은 명품의 개념도 다를수밖에 없어요"라며 "기술과 브랜드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애니콜이 브랜드만을 추구하는 샤넬, 루이비통과 같이 명품 반열에 오를 수는 없죠"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미드-하이(mid-high)급 제품을 타겟으로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고 싶은 디자인`을 만들려고 노력중이죠"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호암아트홀 건물에 이 디자이너를 비롯, 100여명의 제품 디자이너들이 일하는 디자인경영센터를 운영중이다. 이곳에서 각 분야 전문 디자이너들이 휴대폰뿐만아니라 디지털캠코더, TV 등 첨단 IT제품의 `얼굴`을 빚어내고 있다.
◇위대한 디자인으로 `포드 T-카` 꼽아..조형성·범용성 겸비
가장 위대한 디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의외로 답은 포드의 `T-카(Ford Model T, 오른쪽사진)`였다. 페라리나 아우디, 포르쉐, 머스탱 등을 꼽을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이 디자이너는 "포드 T-카는 수공예 단계이던 자동차 디자인을 양산 단계로 진보시킨 역사적인 디자인"이라며 "양산제품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가장 위대한 디자인중 하나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포드 T-카는 양산 체제를 최초로 구축, 약 150만대나 팔리는 등 돌풍을 일으켰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품 디자이너에게는 단순히 멋있는 디자인보다 많이 팔리는 디자인, 범용성을 겸비한 디자인이 더욱 중요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디자이너는 대학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는 "제품 디자인이 가장 발달한 분야는 역시 자동차 디자인"이라며 "휴대폰 디자인을 할때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돼요"라고 말했다.
휴대폰과 같은 휴대형 기기중 애플 `아이팟`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때론 파격적인 디자이너, 때론 평범한 직장인
스타 휴대폰 디자이너인 그가 쓰는 휴대폰은 뭘까.
그는 "실험용으로 제작한 국내 CDMA방식 블루블랙폰Ⅱ(왼쪽사진)"라며 직접 꺼내들고 모양과 색상에 대해 설명했다. 블루블랙폰Ⅱ는 아직 유럽 GSM 방식으로만 출시된 상태다.
자신이 디자인한 휴대폰을 거리에서 볼때 어떤 기분인지 물어봤다. 이 디자이너는 "초반에는 친구들한테 제가 디자인한 제품이라고 자랑하기도 했었죠"라며 "요즘은 제 디자인이 많아져서 무덤덤해지더라구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어릴 때에는 외국 제품을 무조건 좋아하기도 했죠"라며 "우리 애니콜 디자인, 앞으로도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라고 덧붙였다.
`대기업` 소속 `디자이너`의 생활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이 디자이너는 "일은 많지만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라며 "일반 업무와 다른 디자인 작업이라 업무 환경은 매우 자유롭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반듯한 `삼성맨`과는 달리, 일하는 시간이나 방식에 있어 자율성을 존중해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디자이너라고 해서 일반 직장인과 크게 다른 사람은 아니에요"라며 "유난스럽게 옷을 입고 액세서리를 많이 하고 다니지는 않아요"라고 강조했다. 그는 "밀렸던 업무 끝내고 동료들과 맥주 한잔을 기울이고 하는 것은 다른 직장인과 마찬가지"라며 "때론 디자이너의 모습으로, 때론 일반 직장인의 모습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디자이너는 "내일 해외출장이 있어 가봐야 겠어요"라며 "좋은 디자인 구상해서 오겠습니다"라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반보 앞서 걷는 디자이너. 그의 또다른 휴대폰 디자인이 기다려진다.
◇이민혁 디자이너 수상경력
▲2002 코리아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어워드(최우수상)
▲2003 KAID 어워드(최우수상)
▲굿 디자인 어워드(4회 수상 : SGH-E630, SGH-E700, SPH-X9000, SGH-D500)
▲2003 모바일 기술대상(SGH-E700)
▲2004 레드닷(Reddot) 어워드(SGH-E700)
▲2005 3GSM 어워드(SGH-D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