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콘서트를 보러 갈 때마다 느꼈던 것, 실제 투어를 하며 구현하고 싶었던 것을 모두 표현할 거에요. 전 완벽주의자이기도 해요. 그런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머리 속 환상을 현실로 옮겼으니 볼 만 하겠죠? 절대 지루하거나 심심할 틈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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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2500만장 앨범 판매고를 올린 그는 데뷔 때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비교돼왔다. 돌발적인 결혼과 삭발 등으로 ‘사고뭉치’로 분류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비해 아길레라는 ‘스타성’은 떨어지지만 음악적으로는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다는 게 대체적 평가.
‘라이벌’ 브리트니 스피어스와의 관계를 묻자 “다른 누군가와 비교를 당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은근히 자부심을 드러냈다. “우리 두 사람은 팝 음악이 폭발하던 시기에 데뷔 했죠. 그녀를 포함, 모두들 무언가를 빨리 이루기 위해 노력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업계에 있는 이상 그렇게 서두르고 싶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아티스트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최소한 전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가수들을 닮고 싶지 않았어요.”
그의 2006년 앨범 ‘백 투 베이직스’는 고풍스러운 재즈와 블루스의 느낌에도 충실했다. 관악기와 신시사이저가 일궈내는 복잡한 화음을 뚫고 솟구치는 그의 목청이 빛을 발한다. 이 앨범으로 그는 지난 2월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상을 받았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음악은 ‘기술’이 되어선 안 돼요. 음악은 정서와 감정을 담아야 한다는 제 원칙에 충실한 작품이죠. 음반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 빌리 홀리데이 등의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그는 주로 어머니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피아노 연주자였던 어머니는 재즈와 블루스에 심취했었고, 이는 어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블루스는 참 대단해요. 아주 깊은 고통에서 시작된 슬픈 음악이지만 너무 아름답잖아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 각지는 물론 일본 등 해외에서도 유년 시절을 보냈던 그는 “여러 국가에서 살았던 것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깨닫게 해줬다”고 했다.
그는 앨범발매와 투어를 “매번 새로운 영감의 세계로 다이빙을 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또 “10대 팬들의 환호에 둘러싸였던 99년의 저와 지금의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며 아이돌 스타가 아닌 아티스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