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편직(실로 뜨개질을 하는 것처럼 원단을 짜는 일)업계 최초의 여성 CEO(최고 경영자)인 박창숙(57) 창우섬유 대표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고졸 여성 CEO(최고경영자)다. 창우섬유의 지난해 매출규모는 215억원. 국내 대표적 편직업체로 손꼽힌다.
박 대표는 “고교 졸업 후 10년간 섬유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섬유가 지겹게 느껴졌다”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서점을 차렸지만 ‘내 길이 아니다’라는 판단으로 고향과 같은 섬유업계로 다시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1990년 창우섬유를 설립한 박 대표는 꾸준히 제품 차별화와 신제품 개발에 매진하면서 큰 어려움 없이 회사를 성장시켰다. 하지만 박 대표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창업 10년이 지나고 회사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때 거래처의 부도로 30억원 이상 손해를 입었다. 받을 돈보다 지급해야 할 돈이 점점 늘어나면서 하루하루 시름에 빠진 삶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는 “당시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울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며 “3~4년 매일 퇴근 길에 회사가 있는 경기도 양주에서 연천이나 전곡까지 차를 몰고 가면서 실컷 울고 집에 돌아가는 날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직원들과 협력업체의 도움이었다. 그는 “경영난에 빠졌을 때 직원들 월급을 한 달씩 연체해 지급할 수 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당시 직원들이 한 명도 회사를 나가지 않고 함께 어려움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이어 “20여곳의 협력업체들도 원사 공급을 전폭 지원하면서 회사경영 정상화와 연구개발에 매진토록 배려해줬다”고 덧붙였다.
운도 따랐다.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시설 및 운영자금으로 20억원을 대출받았다. 정부가 금융기관을 통해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기도 했다. 제품 개발을 통해 위기탈출을 도모하던 박 대표에게는 낭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제품개발을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하던 상황이었다”며 “은행, 신보 등을 통해 약 30억원의 자금을 융통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원자재를 대거 매입해 비용절감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박 대표는 ‘미르’라는 폴리에스테르 니트 원단을 개발해 대히트를 쳤다. 미르의 성공은 창우섬유뿐만 아니라 원단 무역업체와 염색업체 등 관련기업들의 성장에도 톡톡한 기여를 했다. 이후 레이온 혼방사도 크게 인기를 끌면서 편직업계에서 우뚝 설 수 있었다.
당시의 고마움 때문일까. 박 대표는 지금도 협력사와 상생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올해 전 직원 모두를 ‘내일채움공제’에 가입시켰다. 핵심인재의 이탈을 막기 위한 제도의 성격을 고려하면 창우섬유의 모든 직원은 박 대표에게 핵심인재인 셈이다.
회사가 성장할 때에도 많은 도움을 줬던 협력업체들에게 일거리를 계속 주면서 진정한 동반성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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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당시만 해도 여성 기업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직장 상사나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여성이라는 점 때문이었는지 모두 거절해 창업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직장생활 하면서 모았던 돈과 집안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 ‘미르’라는 대표 상품에 대해 설명을 한다면.
△2008년 개발에 성공한 미르는 저렴한 소재인 폴리에스테르를 이용해 고가인 아크릴 섬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원단이다. 폴리에스테르로 아크릴 효과를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환편기로 편직할 수 있는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깬 제품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따뜻한 스웨터 느낌을 주면서 얇고 가벼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창우섬유의 성공비결을 꼽는다면.
△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들과 똑같아서는 성공할 수 없다. 원사를 구입해 단순편직만 하는 업체들은 많다. 하지만 우리는 편직의 전단계인 원사가공부터 편직까지 원스톱을 이어지는 독자적인 설비구축을 했다.
제품 개발에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꾸준하게 월 4000만~5000만원을 샘플 제작비로 쓰고 있다. 특히 업체의 요청으로 샘플을 제작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샘플을 제작해 의류업체에 제안하기도 한다.
또 약 30년 넘게 섬유업계에 종사하면서 성실함을 바탕으로 쌓은 신뢰도 어려울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꼽을 수 있다.
- 최근 실적을 보면 하향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매출은 업종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 섬유업종이야말로 경기상황에 가장 민감하다. 원단사업의 경우 해외에서 인기가 좋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실적악화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익 역시 개발비가 많이 소요되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경기상황과 관계없이 매출의 6~7%는 꾸준히 연구개발비용으로 투자하고 있다. 경기와 실적이 좋지 않을 때 개발비가 많이 들어간다. 이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지 않으면 다가올 호황기를 대비할 수 없다.
- 직원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데.
△회사가 가장 어려웠을 때 옆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바로 직원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40여명의 직원 모두 정규직이다. 전체 인원의 20% 이상이 10년 이상 장기 근속 중이고 80%는 5년 이상 재직중이다. 10년 가량 다녔던 직원이 나가서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서운함보다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은행 대출을 주선해주고 보증도 서줬다.
- 수출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전체 매출의 70~80% 가량을 남미, 유럽 등에 간접수출하고 있다. 주위에서는 제품을 직접 수출해 수익성을 높이라는 조언도 한다. 하지만 우리 원단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밥그릇을 빼앗는 꼴밖에 안되기 때문에 직접 수출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도 ‘창우’의 원단이라고 하면 최고의 품질로 인정하고 있다.
- 지난해 한국시니어골프협회장에 취임했다. 골프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은데.
△ 2000년 들어서면서 골프를 시작했다. 사업이 힘들었던 2002년 이후 몇 년 동안은 골프클럽조차 잡지 않았지만 비교적 꾸준히 운동을 하는 편이다.
골프는 18홀을 돌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본 모습을 다 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협회장을 맡게 된 것은 아마추어 골퍼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소질이 있어도 가난과 고통으로 꿈을 키우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앞으로 회원 수를 지속 확대해 협회규모를 늘려 가난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려는 꿈나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싶다.
- 앞으로의 꿈은.
△나는 바닥까지 가봤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한 달에 100만원만 벌어도 기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창우섬유의 제품을 구입하는 고객에게 최대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기업,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기업, 임직원들이 평생 일하고 싶은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최근에는 선배 중소기업인으로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고자 본업인 사업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박창숙 대표는
1958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경일여고를 졸업한 뒤 동국무역, 호성섬유에서 근무하다 1990년 창우섬유를 설립했다. 경영혁신형 중소기업 인증을 받은 뒤 모범납세자 표창, 대한상공회의소장 표창, 경기도 유망중소기업 선정 등 대외적으로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