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자마자 전쟁 시작…우크라 가족 생각에 눈물”

체한 우크라이나인 인터뷰
“몸 불편한 부모님은 전쟁터에”
“번 돈의 70%는 가족에게 보내”
“전쟁 1년…끝까지 버텼으면”
  • 등록 2023-02-24 오전 11:27:06

    수정 2023-02-24 오전 11:27:06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된 가운데 한국에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인들이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종전의 바람 등을 이야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째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 앞에 전쟁을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피켓과 응원문구가 적힌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기업 해외전략팀에서 근무하는 체한 우크라이나인 올랴(29)씨는 24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전쟁터에 둔 외동딸에겐 매일 지옥이다. 이 지옥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하루는 동네 가게에 주문해둔 물건을 가지러 간 아버지가 ‘아무도 없다’며 연락이 왔다. 주인에게 전화해보니 ‘공습경보가 울렸으니 다음에 오라’는 말을 들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아빠가 공습경보를 듣지 못한 채 거리를 활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랴씨의 고향은 우크라이나 서부지역 중심 도시인 르비우로 전쟁터인 동부지역과는 거리가 있지만 최근 러시아군의 드론 공습으로 포격 피해가 발생했다.

올랴씨는 자취방으로 퇴근한 뒤 집 안에서 눈물을 쏟는다고 했다. 밖에서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불안감을 누르지만 집에 온 뒤면 우크라이나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고 한다. 그는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겐 더욱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올랴씨는 매일 우크라이나로 돌아갈까 고민하지만 한국에서 번 돈으로 가족에게 생필품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왜 가서 함께 싸우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가족의 친구들도 밥을 먹어야 하고 전기가 필요하다. 현실적인 케어가 필요하다”며 “필수적인 부분에 대한 소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크라이나를 위해 쓰고 있다. 수입의 60~70% 이상”이라고 했다.

눈시울을 붉혔던 올랴씨는 “지난 7일이 아버지 생신이었다. 보통 집에 모여 같이 시간을 보내는데, 전쟁 이후로는 영상통화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슬퍼했다. 그러면서 “만약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들 곁에 없었다는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며 “이런 끔찍한 경험을 빨리 그만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한국으로 온 올가(26)씨는 전쟁터에 남은 가족들 생각에 불안 장애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포격, 사망, 고문, 강간, 학살 이런 끔찍한 뉴스의 연속”이라며 “키이우가 최전선이었을 때는 한 시간에도 몇 번씩 가족에게 연락하곤 했다. 엄마는 창문 밖으로 날아다니는 미사일을 자주 봤다고 한다. 연락이 닿지 않을 때는 연락이 될 때까지 계속 불안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두 사람은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대한 바람도 전했다.

올랴씨는 “1년 동안 잘 버텨왔으니 끝까지 버텼으면 좋겠다. 가장 무서운 건 전쟁이 패배로 끝나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는 앞으로가, 하루가, 1분이, 1초가 없을 사람들이 많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관심을 두고 우크라이나를 응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올가씨는 “전쟁이 끝나면 한국인 남자친구에게 우크라이나를 구경시켜주고 싶다. 키이우 독립광장을 산책하고, 르비우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맑고 평화로운 우크라이나의 하늘이 보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전쟁 발발 1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3일에는 세계 곳곳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바라는 캠페인이 이어졌다. 유엔 총회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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